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을 잃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출국’(감독 노규엽)이 지난 14일 개봉했다.
영화 출국이 박근혜 정부 때 영화 제작비를 지원받았다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받는 모양인데 워낙 그와 관련한 말들이 많기에 일부러 봤다. 원래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지 않나.
영화 출국은 1985년 월북했다가 탈출한 경제학자 오길남 박사 사건과 그가 쓴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1980년대 초 독일 베를린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연구했던 경제학자가 “당신의 학문을 높이 평가 한다”는 북한 공작원의 말에 넘어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월북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 편하게 학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실제로 본 북한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고, 결국 그는 혼자 탈출하여 북에 남은 가족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오길남 박사의 저서를 읽어보지 못해 비교할 수는 없으나 이 영화가 어느 한쪽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편든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일전에 소개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와는 성격이 완전 다르다.
무슨 리스트에 등재되어 혜택을 받았으면 혜택을 본 값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한쪽에서 보면 밥값을 못한 영화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우리가 뭣 땜에 의혹을 제기했나 하는 자괴감을 들게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영화 출국이 개봉은 했는데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가 이전 정부의 제작비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 이유라면 참 한심한 일이다.
이전 정부로부터 영화 제작비를 지원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해도 이전 정부에 이로운 내용이 없는데 왜 이상한 딱지를 붙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식이면 현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뒤에 모두 화이트리스트가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린 언제나 옳고 너흰 당연히 틀렸다’고 하는 편협한 사고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블랙리스트니 화이트리스트니 하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부터 따져보고 싶으나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괴벨스의 말이 생각나서 안 한다. 아나~ 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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