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 김탁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2002년 동방미디어에서 출간했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의 개정판이 민음사에서 출간되고 있다.

프롤로그 prologue

잊힌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 무효가 아닌 취소가 된다는 것, 존재하였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가 된다는 것.

야구 경기에서 비가 오면 이기고 있던 팀은 어떻게 해서라도 5회를 마무리 지으려 하고, 지고 있던 팀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시합이 중단되기를 바란다. 노게임이 선언되면 그날의 모든 노력과 성과는 없었던 것이 되는데, 바로 무효와 취소의 차이 때문이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과자를 뺏어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 마음속에 아빠는 없어”라고 외쳤다.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뎅~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김탁환의 저서 가운데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멋진 제목의 작품이 있다.  매설가-요즘으로 치면 소설가-인 모독이라는 가상의 인물과 서포 김만중, 장희빈, 장희빈의 오라비 장희재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역사 추리소설이다.

사씨남정기
경매에 나왔던 조선시대 사씨남정기 필사본.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은 ‘사씨남정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김탁환 작가가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사씨남정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은 [숙종-유연수, 인현왕후-사씨, 장희빈-교씨]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김만중은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다 귀양까지 갔었던 인물이니 사씨남정기를 집필하게 된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작가라면 이정도의 개연성으로 하나의 작품을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개연성+상상력] 이거 상당히 중요하다.

후궁의 신분에서 중전의 자리에 올랐던 장옥정. 장희빈의 입장에서 자신의 중전책봉에 반대하는 서포 김만중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특히 김만중이 ‘구운몽’과 같이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매설가라는 사실이 더욱 신경 쓰인다. “저놈이 무슨 이야기로 흉계를 꾸미지는 않을까?” 장희빈 일당은 한시도 그에게서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대중을 선동하거나,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기엔 소설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거짓이어도 픽션이니 시비를 걸 수도 없공.

서포 김만중이 남해에서 죽고 사씨남정기를 건네받은 모독이 장희빈 수하들의 눈을 피하여 탈출하는 장면은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이 작품이 왜 역사추리소설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인 듯 사실 아닌 사실 같은 소설, ‘어쩌면’이라는 개연성에 읽는 재미까지 더해진 역사 추리소설이 이 책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읽어볼 작품으로 추천한다.

사정이 있는 사람이야 ‘잊혀 질 권리’에 관심이 많겠지만, 나는 잊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딸아이의 마음속에도,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모두 모두의 마음속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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