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내가 ‘밭’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나간다. 나의 밭은 아파트 베란다 한쪽에 마련한 3단짜리 화분 4개와 독립된 화분 2개에 들어 있다. 밭이 화분에 들어있다고 하니 좀 웃기긴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소박하게 시작했던 농사인데 어느덧 밭이 14마지기나 된다.
채소들이 자라는 14마지기의 밭 말고도 서너 뙈기의 땅도 있다. 그 땅은 쥐방울만한 화분 속에 들어 있는데 그 자투리땅에는 채소가 아닌 산호수, 율마, 고무나무, 낙엽수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거실 한편에는 내가 ‘농업 실험실’이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보카도와 레몬이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아보카도가 뿌리를 내리는 모습은 꼭 사람이 똥을 싸는 것 같다. 아마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지 싶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농사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틈틈이 밭에 가서 채소들이 잘 자라는지 들여다봐야 하는데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온 삭신이 쑤신다. 평소에도 농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농사를 지어보니 정말 농부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밭을 마련하던 날, 그날은 정말 힘들어서 녹초가 됐었다. 밭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흙이 없어서 집과 좀 떨어진 산에서 흙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 흙이 장난 아니게 무거웠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삽을 빌려 산으로 갈 때만 해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에 도착해 이왕이면 좋은 흙으로 가져가고픈 욕심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삽질하다보니 슬슬 체력이 방전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에 쏙 드는 흙이 없는지라 그냥 배양토와 섞어 사용할 생각으로 대충 괜찮은 흙을 가지고 간 마대자루에 퍼 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대자루 가득히 담아가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다 싶어 절반 약간 넘게 담았다. 마대자루를 야무지게 묶어서 둘러메려는데 헉스~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어깨에 메고 가다가는 허리가 아작 날 것 같아서 어린애 업듯 마대자루를 등에 업었다. 마대를 업는 과정도 엄청 힘들었지만 생략하고 하여간 어떻게 마대를 업었는데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내려놨다가는 다시 업지 못할 것 같아서 그대로 힘든 걸음을 옮겼다. 서너 걸음 걷고 쉬고, 다시 서너 걸음 걷고 쉬고······.
그날의 고생을 필설로 옮기자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전에 나가 흙을 업은 채 후들후들 떨며 집에 오니 하루해가 저물었다. 농사고 뭐고 만정이 떨어졌지만 이왕 흙을 가져왔으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흙을 밖에 내다버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사과라도 깎아야지. 그렇지만 그날은 도무지 힘들어서 사과를 깎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못 쓰는 큰 플라스틱 대야를 꺼내 흙과 배양토를 섞기 시작했다. 배양토를 아끼자니 흙이 모자랄까 걱정되고 배양토를 많이 사용하자니 비율이 염려스러웠다. 구글링을 통해 흙과 배양토의 비율이 3:1일 때 가장 낫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렇게 비율을 맞춰나갔다.
꼼꼼하게 비율대로 섞어 가면서 큰 돌이나 잡초뿌리 등을 골라냈는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거의 한나절 동안 그 짓을 했는데 나중엔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뭔 놈의 지렁이가 그렇게 많은지 죽이지 않고 섞자니 죽을 맛이었다.
어릴 때부터 큰 삽 들고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주는 일도 많이 해봤는데 겨우 이만한 일로 힘들어하다니 나 자신에게 실망이 되려고 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흙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이었다. 흙에서 가스가 나온다는 것은 뒤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참, 지렁이 말인데 그거 노지에서는 좋지만 베란다에 만든 밭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물을 주면 이놈의 지렁이들이 밭 밖으로 나와서 죽는데 한 며칠간 지렁이 사체를 치우느라 애먹었다. 차라리 지렁이 똥이 낫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14마지기 나의 밭이다. 요즘은 채소에 물 주는 데 바짝 신경을 쏟고 있다. 잎에 물이 묻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조심조심 주고 있는데 14마지기 모두 물을 공급하고 나면 완전 기가 쪽~ 빨리는 느낌이다.
지금 나의 밭에서 상추, 부추, 곰취 등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자라고 있다. 이것들이 다 자라면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꼭 자식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못 먹지 싶다. 오늘의 농사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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