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선(善)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惡)한 존재인가’
이는 고래부터 해오던 철학적 질문입니다. 맹자(孟子)는 ‘성선설’로 순자(告子)는 ‘성악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했거니와 사실 고자(告子)의 인간의 본성에는 선도 악도 없다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포함한 이 세 가지 윤리사상은 중·고교에서 배우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은연중 맹자의 성선설이 옳은 것처럼 교육되고 있습니다만 나는 성무선악설쪽으로 마음이 기울더군요. ‘인간이 태어났을 때는 완성되지 않은 밀랍과 같다’는 에라스무스나, ‘인간의 마음이 백지와 같다’는 로크의 말에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심지어 칸트도 ‘인성 중에는 선에 대한 능력과 악에 대한 능력이 동시에 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성무선악설과 궤를 같이 합니다.
옛날 어느 큰집에 인품이 훌륭한 마나님이 있었습니다. 그 마나님은 늘 친절하고 겸손하였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마나님과 마찬가지로 친절하고 겸손한 하녀가 있었습니다. 이 하녀가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지 하루는 생각하기를,
‘우리 마님은 매우 훌륭한 분이시다. 그런데 그런 품성은 천성일까, 아니면 환경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
하녀는 마나님의 성품을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부터 마냥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녀가 한나절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하품을 하고 있으니, 마나님이 하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왜 그리 늑장을 부리고 있느냐?”
그러자 하녀는 짐짓 불퉁하게 쫑알댔습니다.
“허구한 날 중에 더러 하루나 이틀쯤은 늦게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역정을 내시니 너무 하시잖아요.”
하녀의 말에 마나님은 화가 나서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녀도 마님의 꾸지람에 질세라 말대꾸를 하였고, 결국 마나님은 노발대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녀는 이튿날에도 늑장을 부렸습니다. 마나님이 꾸짖자 덩달아 말대꾸를 심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3일을 계속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마나님은 드디어 하녀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하녀도 맞서서 험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마나님은 몽둥이를 들고 나와 하녀를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그 후 동네에는 이 마나님이 매우 표독스럽고 악독한 여자라는 고약한 평판이 생겼습니다.
붓다가 ‘행위는 마음의 생각으로부터 일어나고, 마음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움직인다.’고 했는데, 로크나 칸트가 불경이라도 공부한 것일까요? 나쁜 친구하고는 어울리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고자가 성무선악설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본성은 식욕과 성욕에서 나온다”라는 식으로 말만 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이 아니라 성무성악설에 더 주목을 하고 열심히 배웠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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