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면서 영화관이라고는 중·고등학교 때 단체로 관람한 것 외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만 갔던 내가 영화관엘 갔다.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어둠의 시간)’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인이 꼭 봐야할 영화라는 말이 있던데 국회에서 단체로 관람했다는 기사가 없기에 대신 본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이 제일 싫어하는 영화가 ‘다키스트 아워’라는 글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
다키스트 아워는 ‘오만과 편견’을 감독한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하고, 앤서니 매카튼이 각본을, 성격파배우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이 주인공 윈스턴 처칠 역을 맡았다. 게리 올드만은 ‘레옹’이나 ‘제5원소’에서도 느꼈었지만 연기력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다키스트 아워를 게리 올드만에 의한, 게리 올드만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남들은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지만 나는 원래부터 뭐든지 사부작사부작 혼자서 잘한다. 그래서 영화관에도 혼자 갔다. ‘다키스트 아워’가 원체 홍보가 되지 않은 영화여서 그런지 함께 영화를 본 관람객이 도합 삼십여 명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관을 전세 낸 느낌이었는데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내용은 묵직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의 전시내각을 이끌게 된 처칠이 독일의 히틀러와 히틀러의 위장평화공세에 넘어간 챔버레인과 할리팩스에 맞서 영국을 지킨다는 내용이다.
왜 이 영화를 꼭 봐야하는지, 왜 일부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영화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 보이니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참 불편한 진실이다.
처갓집에는 진돗개처럼 생긴 하얀 잡종개가 한 마리 있는데 처가집 식구들은 이름을 백구라고 지어 진돗개를 기르는 기분을 내고 있다. 이 백구가 웃기는 것이 꼭 자기보다 강해보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겐 꼬랑지를 내리고 얌전하다가도 좀 만만하다 싶은 사람에겐 이빨을 드러내며 되려 지가 위협을 한다는 거다. 그러다 꼭 옆구리 한 번씩 걷어차이고서야 얌전해지곤 한다.
멀쩡히 영화 잘 보고 와서 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집에서 키우는 개마저도 상대의 강약을 포착하여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Si vis pacem para bellum(씨 비스 파셈 파라 벨룸).’이라는 라틴속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준비를 하라’는 말인데 백구를 생각해보면 딱 맞는 말이다. 물리는 것을 두려워하면 공격당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짧은 문장으로 오랜 세월동안 전해지는 명언이나 속담 같은 것들은 언제나 옳다. 조상님들의 경험이나 지혜가 잘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준비를 하라’는 말을 풀어서 설명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전쟁을 하자는 말이냐”면서 받아치는 정치인을 TV에서 봤는데 참 무식해보였다. 전쟁은 말싸움이 아니다.
개인관계에서도 한번 호구 잡히면 두고두고 인생이 괴로운데, 국제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이 일본을 싫어한다면서도 호구잡지 못하는 이유는 일본이 만만치 않아서이고, 한국을 발가락 사이의 때 정도로 보는 까닭은 우리가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다.
서희가 거란의 대군을 외교술로 물리치고 강동6주까지 획득한 것을 두고 역시 전쟁보단 외교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공부를 좀 깊이 해야 한다. 서희는 그 말년을 오롯이 전쟁준비로만 보낸 사람이다.
전쟁반대를 외치며 평화를 원한다는 사람은 평화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저의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에는 챔버레인도 있고, 할리팩스도 있고, 괴벨스¹도 있다. 그리고 덤으로 그리마²도 있다. 평화는 구호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나저나 오늘 밤에도 달은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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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제프 괴벨스: 나치 독일에서 국가대중계몽선전장관의 자리에 앉아 나치 선전 및 미화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뛰어난 말솜씨를 가진 그는 사람들을 선전하다 못해 광신적인 사람들로 만들었다. 그의 선전 방송을 들은 당시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2. 그리마: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인물로 사루만이 로한에 파견한 첩자이자 간신이다. 세오덴을 구워삶아 로한을 약화시킨다. 사악한 혀를 가졌다는 뜻의 뱀혓바닥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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