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그리고 원균’은 ‘한국 근대 역사소설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정욱의 장편역사소설이다. 도서출판 ‘여백’에서 2권짜리로 출판한 것인데 제법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책은 많이 팔려야 한다. 역사를 바로 알리는 데는 소설만한 것도 없는데 이 작품은 작가가 균형 잡힌 역사관으로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자 그림책작가는 ‘할매 할배를 꼬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더니 얼마 전에는 덜컥 ‘꽃보다 할매 할배’라는 포토에세이집을 냈다.
기실 ‘꼬시기’에는, 특히 역사왜곡처럼 나쁜 쪽으로 꼬시기에는 에세이 보다 소설이 더 좋다. 소설과 같은 픽션에 역사적 사실을 슬쩍 끼워 넣으면 사람들은 헷갈려서 꼬인다. 잘못되어도 창작이니 뭐니 하면서 빠져나갈 구멍도 많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편린(片鱗)들을 모아 펜을 이리저리 잘 놀리면 세종대왕을 희대의 색마로 만들 수 있고, 백범 김구 선생을 오사마 빈라덴 버금가는 테러조직의 수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안중근 의사를 조폭두목이나 깡패로 만들 수도 있고, 이순신 장군을 전투에 나갈 때마다 부하 한명씩 목을 벤 비정한 장수로도 만들 수도 있다.
다시 원균 이야기로 돌아와서, 원균은 비겁한 장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국민)학교에서 원균은 이순신이 구축해놓은 조선 함대를 왜놈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칠천량 앞바다에 가라앉히고 땅으로 도망치다 왜놈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배웠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소설 ‘이순신’에서 원균을 천하의 악인(惡人)으로 묘사하고 있거니와 이순신 관련 위인전이나 어린이 만화를 보면 원균은 이순신의 공을 탐내 늘 험담하고 술 마시고 이순신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던 장군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이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정말 그럴까?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그러한 사실이 전체가 아닌 부분이라는 것이 문제다.
역사의 기록에서 이순신 함대의 편성표에 있는 선봉대장 원균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23전 23승에 빛나는 이순신의 전공에 원균의 지분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서 잠시 이야기했지만 어느 일부분으로 사람을 바보 만들기는 참 쉽다. 요즘 언론에서 잘하는 앞뒤 말 자르기 비슷한 건데 편집 실력만 있으면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관이 삐뚤어진 작가라면 능히 한 사람의 위인을 천하의 악인(惡人)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정욱 작가의 ‘원균 그리고 원균’이 반갑다. ‘원균을 악으로, 이순신을 선’으로만 보는 세간의 평에도 어느 쪽에 구애됨 없이 역사적 기록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데 이 작품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으나 더 많은 문서를 남겼다고 알려진 원균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없으니 한쪽에 편중된 후대의 평가가 꼭 맞다고만 할 수는 없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있었던 논공행상에서 선무공신 일등으로 이순신, 권율과 함께 원균이 책봉되었다. 후세에서는 이를 암군(暗君) 선조가 자신의 잘못을 희석시키기 위함이라고도 하지만 요즘말로 공이 1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업적은 말할 나위없지만 원균 장군의 경우 공(功)은 고사하고 그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고 있으니 ‘원균 그리고 원균’을 통해 고정욱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처럼 원균이야 말로 왜곡된 역사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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