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할 만한 나이가 아니예요. 나는 아직 당신과 둘이서만 외출할 수 있는 나이가 못 되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그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그날 나의 모든 사랑을 당신께 드리겠어요.”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래 ‘논호레타(나이도 어린데)’는 이탈리아 가수 질리올라 칭케티가 1964년 출전한 산레모 가요제에서 불렀던 데뷔곡이다. 그녀는 산레모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그의 나이 16세였다.
한 사내가 어렵사리 소녀에게 말을 건넨다. 둘이서 바깥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수줍은 소녀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숨이 막힐 만큼 가슴이 떨려 왔다. 하지만, 소녀는 차마 사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때는 그랬다. 여학생을 만나거나, 터놓고 얘기 나누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기껏해야 여학교 학예회에 가서 그림이나 시화(詩畫)를 구경하는 것이 이성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 무렵, 아침마다 등굣길에 마주치는 여학생이 있었다. 한번 일찍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그 여학생을 본 것이 계기였다. 그후 나는 지각 한번 하지 않는 모범학생이 되었다. 늘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는 그 여학생과 같이 등교하고 싶은 마음이 만든 결과였다.
“어떻게 말을 건넬까” “말보다는 글이 낫지 않을까” 나의 머릿속은 온통 그 여학생 생각으로 가득했다. 밤새 전달이 될지 어떨지도 모를 편지를 적었다. 나의 문장력은 나날이 늘었다.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오늘도 나는 밤을 잊고 이름 모를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행복하답니다. 나는 오늘도 그대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매일, 밤새 새로 적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만원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심장은 큰북 작은북을 두들기듯 쿵쾅 쿵쾅 울리는데 그 여학생은 언제나 새침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며 약간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편지는 전달되지 않은 채 시간은 흐르고, 어느 날 편지를 쓰는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논호레타.
비록 강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지만, 아침마다 느껴야했던 가벼운 떨림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나이가 어렸다.
- 듕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면 - 2021-09-25
- 작품성이 엿보였던 영화 자산어보 - 2021-09-24
-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 2021-09-12
덕구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하는 조건으로 기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으나, 무단전재 및 각색 후 (재)배포는 금합니다. 아래 공유버튼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