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김에 쉬어 간다고 일주일가량을 책만 읽었다. 이번에 읽었던 책 가운데 레너드 위벌리의 그랜드 펜윅 시리즈가 기억에 남는다. 그랜드 펜윅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지만 레너드 위벌리는 역시 대단한 작가다. 감히 단언컨대 동물농장의 조지오웰보다 못한 것이 전혀 없다.
서평을 다시 쓰기로 하면서 빠트리지 않아야 할 목록 가운데 그랜드 펜윅 시리즈가 있는데, 역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느꼈다. 나의 책 고르는 기준은 재미와 배움이다. 그랜드 펜윅 시리즈는 이러한 나의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좋은 도서이다.
소설 속 그랜드 펜윅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알프스 국경지대에 있는 국가이다. 영토의 길이가 8킬로미터 폭이 5킬로미터에 계곡이 셋, 강 하나, 높이가 60미터쯤 되는 산 하나와 성 한 채로 이뤄진 우리나라 울릉도의 절반만한 산악 국가인데, 이 콩만큼 작은 나라가 갖가지 사고를 일으킨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침공기」는 첫 번째 사고이자 시리즈의 시작이다.
그럼 순서대로 시리즈 첫 번째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침공기」부터 살펴보자. 인구가 4,000여 명에서 6,000명에 이를 정도로 늘어나 자급자족이 힘들어지면서 평화롭던 그랜드 펜윅에 위기가 닥친다. 건국 이래 600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을 늘려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그랜드 펜윅이 선택한 방법은 미국과의 전쟁.
패전국에 원조를 하는 미국의 이상한(?) 습성을 이용하자는 공국 최고의 전략가 털리 배스컴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쟁개시와 동시에 바로 항복하는 전략을 수립한 그랜드 펜윅의 군주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나 그랜드 펜윅의 의도와 달리 세계 최강국 미국과 전쟁을 하여 얼떨결에 승리하고,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된다. 황당한 스토리의 풍자소설인데 그저 재미로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 책에 담겨있는 풍자내용이 제법 묵직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나라에는 국격(國格)이 있다. 격이란 품격을 말하는데 이것이 갖추고 싶다고 해서 금방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농축되고 압축된 고유의 품위가 ‘격’이다. 격이 사람에게 붙으면 인격이 되는 것이고, 국가에 붙이면 국격이 되는 거다.
품격이 높은 사람이 글을 작성하면 화장실 벽에 붙이는 벽보나 낙서에서도 향기가 난다.
[참고] 공용화장실 변기 막혔을 때 붙이는 벽보에도 품격은 있었다.
걸리버 여행기나 동물농장과 같은 풍자소설이 사랑받은 이유는 부조리한 시대상황을 풍자라는 기법으로 꼬집어 각성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레너드 위벌리의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침공기」는 1953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연재된 단편 「포효하는 생쥐(The Mouse that Roared)」를 개작한 것이다.
이 말은 전쟁의 위험이 극에 달했던 동서냉전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6·25 한국전쟁이 막 끝났던 시기에 발표된 이 한권의 책은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귀한 책을 알아보는 보배로운 눈으로 이 작품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소개한 박중서 번역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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