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안경잡이가 되기로 했다. 안경잡이면 안경잡이지 본격적인 안경잡이가 뭔 말이냐 하면 이제 주야장천 안경을 끼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동안은 안경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력이 지극히 나쁨에도 불구하고 안경 없이 버텼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다간 딸랑 두 개밖에 없는 눈에 칼을 대는 불상사가 생길듯하고 무엇보다 운전하는 것이 겁이 나서 안경잡이 대열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완전히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고 이번에 이만저만한 일로 안과에 갔다가 더 버티는 것은 모험이란 결론이 나온 것이 결정타였다. 안경을 껴서 지킬 수 있다면 어울리지 않더라도 껴야지.
안경을 끼기로 마음먹고 사방을 둘러보니 안경 광고들만 눈에 뜨인다. 특히 다초점렌즈 99,000원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흠 저렇게 광고하는 것을 보니 99,000원이면 싼 모양인데 다초점렌즈가 좋은 건가?
알음알음 알아보니 △인터넷에서 안경테를 구입한 후 안경점에서 렌즈를 맞추는 방법이 슬기로운 소비생활인 것 같고, △그냥 안경점에서 올인원(all-in-one)으로 안경을 맞추는 방법은 보편적인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답게 인터넷에서 안경테를 구입하기로 마음먹고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별의별 안경테가 나온다. 비싼 건 비싸고 싼 건 싸 보였는데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기준이 없으니 비싼 건지 싼 건지 알 도리가 없어 그냥 안경점에 가보기로 했다.
안경점에 가니 안경테가 수백 개는 족히 넘고 얼추 수천 개는 될 정도로 많이 있다. 가격대별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유리로 된 고급 진열장 안에 있는 안경테들은 일단 단위가 십만 단위들이다. 이십만 원대부터 사오십만 원대 심지어 백만 단위도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유리 뚜껑이 없는 진열대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안경테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장 싼 것이 오천 원이다.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올드한 뿔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천 원짜리다. 안경테는 아무래도 뿔테지, 암만.
안경테를 찜한 후 시력검사를 받았는데 검사할 것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얼추 30분 넘게 검사를 받은 것 같다.
그 결과를 토대로 안경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일반 단초점렌즈로는 나의 눈을 제대로 보완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 사용빈도가 많은 근시용으로 하나 맞추던지, 2) 근시용과 원시용 각 1개씩 맞춰서 상황에 맞게 번갈아 끼던지, 3) 깔끔하게 하나로 다초점렌즈로 맞춰야 한단다.
누군가의 꼬드김에 잘 넘어가지 않아서 “도를 아십니까?” 하는 친구들의 본부에 가서도 멀쩡하게 걸어 나온 나, 그렇지만 누군가 조목조목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면 홀라당 잘 넘어간다.
원래 나의 계획은 1번 내지 2번이었으나 3번으로 자꾸 마음이 기운다. 그러고 보면 남자의 마음도 갈대인 것 같다.
계획이 갑자기 변경되는 것을 경계하는 성향인지라 안경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요량으로 그날은 안경점에서 그냥 나왔다. 그날 밤,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안경학學을 공부하니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안경테
1) 안경테는 호불호가 갈리는 상품인지라 금테든 쇠테든 뿔테든 개인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되지만 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디자인은 곤란하다.
2) 안경테의 가격과 성능이 비례하는 것은 5~10만 원 정도까지이고, 그 이상은 이름값일 뿐 성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렌즈
1) 안경렌즈는 유리 렌즈와 플라스틱 렌즈가 있고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하므로 판단을 잘해야 한다. 성능은 유리 렌즈가 낫지만 플라스틱 렌즈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2) 렌즈는 값과 성능이 정비례하므로 이름 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공부를 끝내고 다시 안경점에 방문했다. 어제 나를 접대(?) 했던 안경사가 휴무여서 새로운 안경사와 어제 했던 과정을 다시 반복했다. 기기들을 다루는 손길이 능숙한 것이 안경사마다 실력(?) 차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새로운 안경사 역시 다초점렌즈를 권했다. 어제 안경사는 선택을 나에게 맡기는 편이었는데 오늘 안경사는 다초점렌즈 외에는 의미가 없다는 투다.
누진 다초점렌즈인지 그냥 다초점렌즈인지 하여간 다초점렌즈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귀에 쏙쏙 들어온다. 국산 렌즈가 있고 외국산 렌즈가 있는데 국산은 이렇고 저렇고 외국산은 호야가 있고 소니가 있고 칼자이스가 있고 어쩌고저쩌고.
압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같은 공정이라고 보면 외국산 렌즈가 압도적으로 비싸다. 우라질.
다초점렌즈 안경을 끼면 어지럽다는 사람이 있다. 사물이 일렁이며 보인다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값싼 렌즈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오늘 안경사의 변이다.
무슨 렌즈를 선택했는지는 비밀로 하고-과소비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하여간 다초점렌즈를 하나 골랐다. 그런데 안경테 고민이 생긴다.
어제 찜했던 안경테는 오천 원짜리 뿔테인데 안경사의 말로는 이놈은 AS가 안 된단다. 안경알이 일반 단초점렌즈였으면 그냥 그대로 할 텐데 AS가 안 된다면 그건 좀 문제다. 안경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쩌누. 안경알을 살려야 하는데 그게 힘드니.
AS는 만 원이 넘어가는 제품만 가능하다고 해서 가격표를 보며 찜했던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안경테로 다시 골랐다. 나의 디자인적 안목은 오천 원짜리 밖에 안되는 것인가. 도무지 맘에 드는 모양이 없다.
그러다 겨우겨우 하나 골랐다. 찜했던 오천 원짜리 뿔테보단 2% 정도 부족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안경사의 말로는 오천 원짜리 뿔테와는 재질이 다르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그것 같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뿔테에 외국산 다초점렌즈가 내가 선택한 조합이다. 세웠던 예산을 초과했지만 기왕지사 밝은 세상 보려고 맞추는 안경, 현명한 결정이었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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