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우울, 분노, 긴장, 자기비하 등 정서적인 증상과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변비, 두통, 요통, 호흡곤란 등의 신체적 증상 그리고 건망증, 식욕의 변화, 수면장애 등과 같은 행동적 특성을 보이는 스트레스에 기인한 한국 특유의 질환인 화병(火病). 불 화(火)에 병 병(病)자를 쓰는, 그 이름만으로도 살벌한 화병이야기를 좀 해보자.
우선 화병을 한국 특유의 질환이라고 한 까닭은 화병을 영어로 ‘hwa-byung’ 또는 ‘mental or emotional disorder as a result of repressed anger or stress’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다. 화병을 ‘억압된 분노 또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또는 정서적 장애’라고 설명한 것은 해석일 따름이고, 달리 명사화된 단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무리한 추측일 것 같지는 않다.
정말 영어권 국가에 화병이 없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한국엔 분명히 화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한 표현 가운데 ‘울화통 터진다’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 마음속에 불처럼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속에 억제되어 울체되어 있는 상태를 울화(鬱火)라고 하는데, 울화병은 화병의 또 다른 이름이다.
화병은 어떨 때 생길까? 한의학에서는 즐거움(喜), 노함(怒), 근심(憂), 염려(思), 슬픔(悲), 두려움(恐), 놀라움(驚) 이렇게 일곱 가지 감정을 칠정이라고 하고, 이 칠정으로 인해 기(氣)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여 얽히고 뭉친 병리적 상태를 칠정울결(七情鬱結)이라고 하는데, 칠정울결이 심해지면 화병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칠정울결은 우리가 잘 아는 스트레스인데, 화병은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생기는 병이라고 하니, 화병을 스트레스의 상위 버전이라 할 수 있고, 스트레스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들이 아는 거의 모든 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만병의 어머니’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스트레스는 혈관질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떤 메커니즘일까?
간혹 혈액이 지나다니는 통로인 혈관에 문제가 생기거나 혈액 자체의 문제가 생겨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혈전 같은 것이 생겨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지는 경우이고, 후자는 혈액이 젤리처럼 응고되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또 혈소판에 의해서도 혈액의 순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혈소판은 혈액의 응고나 지혈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 조각으로 혈관이 손상되어 피부나 점막 등에 출혈이 생겼을 경우 가장 먼저 활성화되어 혈액을 응고시키는 것도 바로 혈소판이다.
북극권의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중풍과 같은 뇌혈관 질환에 잘 안 걸리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즐겨 먹는 생선이나 바다표범 때문이라고 한다. 생선이나 바다표범에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혈소판을 낮추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혈소판은 지혈작용과 같은 유용한 부분도 있지만 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 화병, 그러니까 스트레스와 혈관질환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고 혈소판을 응집시킨다. 그로 인해 혈액이 제대로 순환을 하지 못하게 되고 뇌혈관 질환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들이 아는 많은 병이 원활하지 못한 혈액순환으로 생기는데, 혈액순환 장애는 혈소판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혈소판의 응집은 스트레스에 의해 영향을 받으니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혹여 마음 깊은 곳에 희(喜), 노(怒), 우(憂), 사(思), 비(悲), 공(恐), 경(驚) 작은 불씨 하나 심어져 있거든, 명상을 하던, 철학을 하던, 기도를 하던 그저 잘 관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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