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28·본명 이승현)가 경찰에 출석한 지 8시간 30분 만인 28일 오전 5시 31분쯤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현재 승리는 마약 유통·성범죄·경찰 유착 의혹 등이 불거진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을 실제 운영했다는 논란과 해외 투자자를 상대로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승리의 경찰 출두는 경찰의 요청이 아니라 자신에게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벗겠다며 자발적으로 경찰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일에는 과정과 절차가 있는데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무작정 찾아가면 조사할 준비가 안 된 경찰로선 난감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조사받겠다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을 그냥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승리는 이날 있었던 경찰의 조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서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했다는 말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기억나지 않는다.”
범죄자들, 특히 정치인 같은 지능적인 사람들이 경찰이나 검찰 조사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원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먼저 1차 방어하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수위조절을 한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는 모 정치인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공동정범 혐의로 법원에 출석해 영장실질검사를 받았던 청해진해운 김한식 대표가 모르쇠 전략을 펼치다가 담당판사로부터 “대표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느냐”고 호된 질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모른다’ 혹은 ‘기억나지 않는다’와 같은 말은 형사사건에서 자기방어 차원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 수사단계에서 진술을 거부하는 방법과 함께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의 입증 책임이 검찰에게 있기 때문에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는 ‘진술거부권’이라 하여 법에 명시된 권리이다.
이렇게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답변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형사재판에선 유용하지만, 민사재판에선 반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경우 당사자들의 주장이나 반론에 대한 판단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모른다’ 혹은 ‘기억나지 않는다’에 대한 판단이다.
형사재판에서 “잘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인정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같은 말인데 왜 판단이 다른 것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형사재판에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가 적용되니 당연한 것이고, 민사재판에서 판사가 “피고는 원고에게 천만 원 빌린 사실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데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빌린 것으로 보일까, 안 빌린 것으로 보일까?
형사사건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모른다’ 내지 ‘기억나지 않는다’ 작전으로 재미를 보는 정치인을 따라하느라 민사재판에서도 그랬다가는 재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 꼭 알아두길 바란다. 말은 같아도 재판은 다르다니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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