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자 작가 포토에세이(17) 꿈을 가진 닭

꿈을 가진 닭
산책로 옆 수풀에서 발견한 닭. ⓒ김인자

벼슬이 쨍쨍하게 서있는 산 닭을 봤다. 황선미 동화속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인가? 아니면 나처럼 열 받아서 무작정 집을 나온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엄마’ 속 엄마인가?

시골에서나 봄직한 놔서 키우는 닭도 아니고 도심 아파트촌에서 그것도 산책로 수풀에 홀로 서있는 산 닭이라니. 놀랍고도 신기했다.

“엄마, 할머니 또 라면 드셨어.”
“할머니, 라면 드시면 안 돼. 못 드시게 하지.”
“말렸는데도 할머니가 괜찮다고 딱 한 개만 드신다고 하셔서···”

너무 속상해서 입은 옷 그대로 집을 나왔다. 막상 집을 나오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아파트 옆에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가까운 산책로로 들어섰다. 추운데도 산책로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걷기운동을 하고 있었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
조금만 걷다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산책로로 들어서서 걷다가 신기한 걸 발견했다. 닭이다.

‘반려견도 아니고 한겨울에 닭이 왜 이곳에 있지?’
살아있는 닭이 뭔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닭도 놀랐는지 부리나케 수풀 속으로 숨는다.

“지난 번 보다 많이 컸네.”
산책하시던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거신다.
“할머니, 저 닭이 여기서 살아요?”
“양계장도 아닌데 닭이 여기서 어떻게 사누.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여기 있은 지 한 사날 됐어. 그래도 사람들이 아직까진 잡아다 먹진 않았네.”

할머니가 신기하다는 듯이 앉아서 손가락을 까딱까딱하시며 수풀 속에 서있는 닭을 가리키신다. 할머니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건장한 까만 닭 한마리가 정면을 응시하며 호기롭게 서있다.

얼핏 보면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된 동물처럼 죽은 듯이 꼼짝도 않고 서있는 닭. 마치 “나는 살아있는 닭이 절대 아닙니다.”하는 것 같다. 산책로를 오가며 운동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닭을 쳐다보며 “저 닭이 아직도 여기 있네?”하며 아는 체를 하고 지나간다.

저 닭도 꿈이 있어 닭장에서 나온 것일까? 닭을 보는 순간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떠올랐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암탉 ‘잎싹’에 관한 이야기이다.

닭이니 그저 양계장에서 주는 대로 먹고 알이나 쑥쑥 낳아 주면서 살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잎싹은 그렇게 사는 건 암탉으로서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계장과 안전한 마당을 나와 버린다.

어쩌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을 가슴에 간직하는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 아흔 살인 어머니가 오래 오래 내 곁에서 살아계셨으면 하는 내 꿈처럼.

이 추운 겨울, 저 검정 닭은 무슨 꿈을 꾸고 있기에 따뜻하고 안락한 제 보금자리에서 나왔을까?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산책로에서 언제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잡혀가 한 그릇의 음식이 될지도 모르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알을 부화할 꿈을 꾸고 있을까?

울타리에서 나왔을 때부터 매 순간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텐데 검정 닭은 의연하고 당당해 보였다. 저 닭이 저렇게 당당하고 의연할 수 있는 건 특별한 꿈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가까이서 닭을 보고 싶은 마음에 좀 더 바짝 검정 닭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내가 닭에게 가까이 가면 닭은 저 만치 물러났다. 멀리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가벼운 경계의 표식만 주는 것 같다.

저 정도의 의연함과 대범함이라면 사람들한테 잡힐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 한겨울이라 잎이 무성한 수풀은 아니지만 다행스럽게도 닭은 “내 몸 하나는 너끈히 보호할 수 있어”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닭은 혼자지만 결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힘들어도 외롭지 않게 하는 신비로운 힘, 그게 무얼까? 그건 바로 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숲을 보면 나무를 보지 못한다. 반대로 나무를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 어쩌면 그것은 바로 내가 간절히 바라는 나의 꿈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 닭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 가진 꿈들을 가슴에 품고 각자 주어진 삶을 즐겁게 살아가라고 용기를 주러온 응원군일지도 모른다. 내일 동이 트는 대로 좁쌀 한 줌 가져다가 물과 함께 줘야겠다.

김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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