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
슬픈 노래 날 위해 부르지 마세요.
무덤가에 장미꽃도 심지 마시고
아무것도 심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
슬픈 노래 날 위해 만들지 마세요.
무덤가에 백합꽃도 심지 마시고
아무것도 심지 마세요.
푸른 잡초가 무덤 위에서
이슬에 젖을 지라도
그대 기억나시면 잊어요.
아무 말 말고 잊어요, 잊어요, 잊어요.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대가 돌아서가도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어요.
아무 말 없이 웃어요, 웃어요, 웃어요.
1990년 발표된 송골매 9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은 영국의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발표한 같은 제목의 시(詩)에 배철수가 개사하여 멜로디를 붙인 노래이다.
노래를 듣는 내내 로제티의 이 시가 이토록 쓸쓸하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 죽음이라는 것이 밝은 주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시가 노래에서 풍기는 것처럼 마냥 서글픈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한 탓이다.
낯선 삼나무를 백합꽃으로 바꾼 것은 이해되지만, “생각나면 기억하라”가 “기억나더라도 잊어라”로 바뀐 것은 의외다. 잊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가. 잊으라는 주문이 참 아프게 들린다. 로제티가 덤덤하다면 배철수는 단호하다.
배철수의 기름기 하나 없이 건조한 목소리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가창력이 별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잘 부르는 거지. 요즘 가수들의 무슨 뜻인지 전달도 안 되는 노래를 듣다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거든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셔요.
내 위에 푸른 풀 푸르게 두고,
비 맞아 이슬방울에 젖게 하세요.
생각이 나시면 기억하시고,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나는 그늘도 보지 못하고,
비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나이팅게일이 고통스럽게 울어도,
나는 듣지 못할 거예요.
해가 뜨고 지는 일 없는,
희미한 어두움 속에서 꿈을 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할 거예요.
어쩌면 나는 잊을 거예요.
When I am dead, my dearest
-Christina Georgina Rossetti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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