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는 김서진 작가의 ‘선량한 시민’을 읽었다. ‘선량한 시민’이 세계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읽은 것은 아니다.
권위 있다는 맨부커상을 받았던 작품이 별로였듯이 무슨 상을 받았기 때문에 좋은 작품일거라 판단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내가 김서진의 ‘선량한 시민’을 읽은 것은 책표지 안쪽에 있었던 문장 하나 때문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작가를 소개하는 글 밑에 있던 문장.
“당신이 꼭 읽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것을 직접 쓰는 수밖에 없다. _토니 모리슨”
작가소개에 의하면 김서진 작가는 애드거 앨런 포와 아서 코난 도일의 팬이고, 공포영화광이어서 살인, 죽음, 공포라는 소재에 매료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작가가 토니 모리슨의 문장을 굳이 소개한 것은 아직 세상에 나온 적 없는 이야기를 이 책 속에 담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범죄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선량한 시민’은 여타 범죄소설과 달리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독자에게 알려주면서 시작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면 김이 샐 법도 하건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평범한 사십대 주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법률적으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부연할 수 있는 사건을 저질렀다. 모범시민이랄 수는 없지만 평범한 시민의 범주에 드는 오십대 남자가 밤중에 개천에서 오줌을 누다 죽었다. 사건의 발단이다.
사십대 주부 은주와 오십대 남자 강인학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경찰은 술을 많이 마신 강인학이 실족하여 죽은 것으로 처리하려고 하였으나 범행을 목격한 창수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복잡한 양상을 띤다.
동기 없는 살인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그 때문에 ‘합리적 의심’이라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내가 알기로 경찰은 합리적 의심을 상당히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라 느낌이 들면 아무런 증거나 물증이 없어도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신공을 구사한다.
덕구스럽지 않게 대한민국 경찰을 폄하하는 이유는 이 글 ‘8천만 원 미담과 합리적 의심, 그 이중성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하여간 작품에서 경찰은 합리적 의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범인을 잡고도 합리적 의심 때문에 범인을 풀어주는데, 그러면서도 은주를 향한 합리적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장편소설 치고는 등장인물이 단출한 편이라 글은 술술 잘 읽힌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국내작가가 쓴 추리소설 내지 범죄소설은 선호하지 않는다.
외국작가와 달리 국내작가는 범죄자를 미화 내지 옹호하는 시각을 지닌 것 같고, 작품의 전개에서도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보다는 범죄자나 범행을 묘사하는 쪽에 더 치중을 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나 김서진의 ‘선량한 시민’은 그런 문제점 없이 ‘동기 없는 살인’이라는 의미 있는 주제를 무난하게 표현해 냈다.
그러나 솔직히 깊이가 느껴지거나 엄청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억지스럽게 분량을 채운 느낌이랄까. 좀 더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엮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미 모리슨의 글에 낚인 느낌이지만 쉽게 읽히는 것이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앞으로의 건투를 빈다. 완투 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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