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점심식사를 도시락으로 먹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장성한 지금까지 아침마다 새벽일 나가는 저에게 도시락을 싸주시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저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그리고 결혼해서 20년간을 웬만한 날을 빼고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 것 같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도시락을 싸주시는 것으로 알았지만 현재에 와서는 어머니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최근 우리 부부가 별거란 것을 하고나서 회사에서 먹는 밥이 제 당뇨에 좋지 않고, 제 아이들에게 용돈이라도 더 얹어줄 요량으로 1년 반 전부터 도시락을 싸가지고 새벽일을 나간답니다.
저의 어머니는 평생을 도시락을 싸가지고 남의 집일을 하러 다니셨는데, 그 이유가 점심식사 비용을 아껴 살림에 보탬을 주려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네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냥 무덤덤했었다는 것이 맞겠죠.
나를 보는 아들들도 아마 저와 비슷하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서운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만 저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도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 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을 뿐이죠.
언제나 새벽 세시 반이면 일어나서 제 도시락을 싸주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죄송할 뿐입니다. 회사의 특성상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저는 네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다섯시에 교회에 들러 새벽예배를 보고 아침 출근합니다.
저는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처음에는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의 의미를 알지 못했어요. 어느 날 문득 도시락을 먹는데 목이 메더라고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독립하여 자기의 가정을 꾸리고 자기 의식주 정도는 해결해야 하는데, 저 혼자 그러지 못하는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였어요.
오늘은 도시락을 보니 중·고등학교 때 싸주셨던 도시락의 즐거움이 아닌 현재까지도 어머니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죄송함이 마음을 짓누르네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찬투정도 많이 했었어요. “왜, 반찬이 맛이 없는 거야?”라고 물었던 적도 있었죠. 친구 중에 좋은 반찬을 싸가지고 오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어머니 자랑도 해보고, 그런 반찬을 싸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일을 다녀온 후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반찬을 사러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아예 반찬과 밥을 먹지 않았던 적도 있었죠. 언젠가는 옆 친구가 나의 맛없는 반찬과 자기의 좋은 반찬을 바꿔 먹자는 말에 며칠을 바꿔 먹고는 어머니에게 자랑을 했던 적도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년간 매일 두 가지 반찬만을 싸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더덕과 병어포여요. 근 1년 반을 싸가지고 다니는 동안에는 반찬 투정을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럴 염치도 없지만요. 그런데 이 두 가지 반찬도 질리더라고요. 근 1년 반을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죠.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어요. 두 가지만 먹으니 이제 질린다고. 그래서 지금은 세 가지를 싸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제가 아직도 어머니를 식당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저도 식당에서 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젊은 사람들과 같이 앉아 식사하는 것이 부담스럽더라고요. 우리 회사 직원이 삼천 명인데 거의 젊은이들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일의 특성상 혼자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 속에서 식사를 하자니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왠지 그랬어요.
그러던 중에 저와 같이 일하시는 여사님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도 그때부터 자연스레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죠. 물론 돈도 절약할까 해서요. 처음에는 저도 망설였어요. 그런데 제 창고에서 조용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노라니 왠지 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게 되었죠.
작년에 태권도 도장에 다닐 때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제가 같이 운동을 하다가 하루라도 안 보이면 “할아버지 안와요?”하고 사범님에게 묻는데요. 저는 그때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내가 할아버지구나”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고 하면 그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도시락 싸주세요?”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전 그런 생각이 들면 속이 뜨끔해요.
제 차를 간혹 탑승하시는 여사님이 계셔요. 자식이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가 살고 있대요. 자식이 나이가 많은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토요일이면 자식 집에 들러 반찬이며 기타 생활을 돌봐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는 자기 자식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못해먹는다고 매일같이 자식 집에 들렀다가 하나하나 챙겨주고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시더라고요.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택시 일을 하는 남편까지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으니 자식 돌보랴 남편 간호하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도 일언반구 하지 않고 감내하며 사시는 것이 저의 어머니 모습을 빼다 박은 것 같아 보는 저의 마음이 미어지더라고요.
저의 어머니는 저에게 항상 말씀하세요. “민석아, 마음 내려놓아라. 그것만이 살길이다”라고요.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젊은 시절 가슴에 몽우리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제가 어머니 배를 저의 손으로 밀어 내리면 몽우리 같은 것이 내려가는 것을 경험 했어요.
어머니는 우리가 장성하면 죽으려고 싸이나*를 한 봉지 가지고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내가 죽긴 왜 죽어. 끝까지 살아야지. 기껏 죽으면 나만 손해고,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때부터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 했답니다. 그리 쉽진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그때부터 몽우리가 사라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몽우리가 없어졌어요.
그래요. 어머니! 저도 마음을 내려놓죠. 뭐, 인생 별거 있나요. 해볼 것 다 해보아도 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이 나이에 제 창고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으면서 배워갑니다.
어머니! 오늘 도시락도 맛있게 먹었어요.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이라 맛도 좋네요. 어머니 사랑 합니다. 영원히 그리고 또 영원히.
*****
*싸이나: 옛날 쥐를 잡을 때 사용했던 독극물. 청산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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