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전자 이야기〈1〉 콧수염이 지저분했던 동양전자 주인과의 만남

옛날 중고전자상
옛날 중고 전자상의 내부 (본 내용과 관련없음).

집 앞에 조그마한 중고전자상이 있다는 것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슈퍼마켓이나 다니던 나에게는 이 조그마한 중고전자상¹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중고전자상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가게로 향했다. 무엇을 사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이 중고전자상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가게에 들어선 나는 안으로 소리쳐 주인을 찾았다.

“저, 아저씨~”
“왜요? 물건 사시게요?”

윗입술을 덮을 정도로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몸을 기우뚱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그를 본 나는 ‘참 지저분하게도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내 나이가 서른 초반이었으니 아마 그는 사십 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 성훈이 아빠 아니세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가게 바로 앞이 성훈이 아빠 집이잖아요. 가게 앞으로 다니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
“뭐 사시려고요?”
“예, 물건이나 한번 보려고요.”
“그럼 한번 보세요.”

나를 알고 있다는 말에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집의 선풍기가 고장이 난 상태라 적당한 제품이 있다면 한 대 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가게의 물건을 구경하며 나는 선풍기 수리도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수리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집에 가서 선풍기를 가져와 고장 났으니 고쳐 달라고 하였다. 수리비는 생각보다 더 저렴했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고, 다음날 나는 또 가게를 찾았다. 어제처럼 그냥 물건이나 구경하려는 생각이었다. 주인은 가게 밖에서 물건을 열심히 수리 하고 있었다. 나는 주인에게 말을 걸었고,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주인은 나에게 커피 한잔 하자며 다방에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가게 안에서 나와 주인 그리고 다방아가씨 이렇게 셋이서 웃고 떠들고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짬짬이 손님이 오면 주인은 잠깐씩 손님과 흥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우리는 몇 번 만나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주인은 아니 그 형님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다는 것, 아버님은 학교 선생님 이었고 자기는 5남매 중 셋째였다는 것, 모 전문대를 나와서 공장에 취직해서 7년을 다녔지만 별 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는 것, 그 와중에 중고전자상 일을 친구에게 배웠다는 것, 일을 시작 한지가 2년 되었고 돈이 제법 벌린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주인을 형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나와 형님과 다방아가씨는 시간 날 때마다 가게에서 만나는 일이 잦았다. 형님은 정신지체가 있는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긴 했는데 여자가 정신을 놓으면 집을 나가 다음날 경찰의 손에 이끌려 들어오는 날이 워낙 많았고 살림을 이끌고 나가지를 못해 헤어져 버렸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영원한 총각이라고 항상 자랑하였는데 그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하지만 워낙 친구를 좋아하고 돈도 잘 버는지라 그런 생각도 금방 잊어버렸다.

나와 이 중고전자상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동네에 연립과 원룸 붐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동네를 떠날 때까지 우정은 계속 되었다.

지금이야 모든 것이 다 변해버려 그 형님과 나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다방아가씨와의 만남은 끝났지만, 나는 가슴속에 쌓여있던 답답한 마음을 가게에서 형님과의 대화를 하면서 날려버릴 수 있었고, 가게를 드나드는 무수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속사정과 내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아파트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그 여름날 아이스크림 한 개로 더위를 녹였던 인간의 애틋함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언제나 그 중심에는 동양전자라는 중고전자상이 있고, 절름거리는 몸과 지팡이와 콧수염과 그 형님의 검은 지갑이 떠오른다.

*****

1. 중고전자상: 옛날 유행했던 전파사와 약간 다르다. 오늘날의 중고 전자 제품 판매점이 수리를 겸한다고 보면 된다.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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