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이 상황은 실제상황입니다, 이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지지난해 겨울, 지인의 지인은 동네 사람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벌금 300만원을 냈다. 죄명은 형법 제307조 제1항에 적시된 ‘명예훼손죄’였다.
이 지인의 지인(이하 ‘지인’)은 ‘우리 동네 성범죄자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인터넷 글을 보고 성범죄자알림e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성범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친구에게 메신저로 전송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성범죄자가 고소를 했던 거였다.
올해 이야기도, 지난해 이야기도 아닌 지지난해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하면 이런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오늘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의 여성가족부에서 한통의 우편물이 왔다. “아니, 나에게 여가부에서 무슨 볼일로?”
사실 전에도 여가부에서 보낸 똑같은 우편물을 받은 적이 있었으므로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우편물에는 ‘고지정보서’라는 제목의 문서(제2018-2125호) 한 부와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세 곳의 명의로 만들어진 ‘성범죄자 신상정보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요?’라는 제목의 14컷짜리 만화가 인쇄된 문서 하나가 들어 있었다.
‘고지정보서’라는 문서에는 한 명의 성 범죄자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이 인물을 알고 있다는 거다. 최근 내가 자주 가는 산책로에서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던 자였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아는 사람이 이런 정부문서에 등장하면, 많이 놀랍고, 신기하고, 딸 가진 이웃에게 알려주고 싶고 그렇다. 나 역시 그런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사진까지 찍었다.
그러나 청소년을 강간했다는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이웃과 공유하면 저 위의 지인처럼 나 역시 처벌받을 것이 뻔~하므로 그냥 참았다.
우려하는 바는 나에게 이렇게 보낸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우편물을 발송했을 것인데, 그들 역시 나처럼 이웃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성 범죄자에 대한 정보공개를 왜 한 곳으로 국한시켜 놓았냐는 점이다. 성범죄자알림e를 통해 조회하려면 ‘키보드 보안’, ‘화면캡쳐방지’, ‘워터마크’ 등 부가적으로 설치해야하는 보안프로그램이 있어 사용이 꺼려진다는 사실을 모르나? 컴퓨터에 이것저것 설치하는 것 안 좋다.
또 조회는 가능하나 유포는 안 된다는 점에도 선뜻 공감해주기 어렵다. 개인끼리 조심하자는 의미로 주고받는 정보는 불법이고, 정부에서 고지하는 정보는 합법이라는 발상은 좀 아니지 않나? ‘고지정보서’를 발송한 것은 어차피 조심하라는 뜻일텐데.
물론 조심하자는 목적 없이 성범죄자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만 유포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성범죄자와 한 동네 사는 사람이 다른 딸 가진 이웃들과 정보를 공유한 정도라면 면책함이 옳다고 본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인권국가, 선진국가 소리 듣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가해자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은 사형제도가 없고¹, 범죄자의 인권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권국가다”라고 인정해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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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형제도: 사형제도가 있더라도 10년이상 사형을 실시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사형폐지국가로 보는 국제사회의 관례가 있다.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7년 12월 30일 여의도광장 살인질주사건의 범인인 김용제를 비롯해 23명을 대상으로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후 20여 년이 흘러 실직적 사형폐지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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