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쓸까말까··· 쓸까말까··· 까말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 이영도의 ‘퓨처 워커’이다. 판타지 소설치고는 너무 심각하고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재미라는 부분이 많이 훼손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판타지 애독자들은 너무 심오하면 곤란해 한다.
허나 고만고만한 수준의 장르문학(판타지소설)에서 심각하다고 빼고, 심오하다고 빼고, 어렵다고 빼고, 재미없다고 빼면 서평 할 작품이 얼마 없다. 하여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소개를 하고 판단은 읽는 사람들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퓨처 워커(future walker)는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이영도의 두 번째 판타지 소설이다. 독립된 작품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드래곤 라자’의 후속편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영도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드래곤 라자’가 워낙 빼어난 수작이었던 까닭에 상대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퓨처 워커’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뛰어난 형이나 언니를 둔 동생의 비애랄까.
이 작품은 초판이 출간된 지 10년 만에 양장본 4권짜리로 새롭게 출간되었는데, 양장본 버전은 1편 사라진 시인의 추모곡, 2편 시간 속에 던져진 파멸의 닻, 3편 거짓된 사랑의 진실, 4편 시간의 장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3편까지만 읽고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문학성 짙었던 ‘드래곤 라자’에 대한 향수와 작가의 문장력에 힘입어 그런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4편 이후 내용은 차라리 칸트나 쇼펜하우어를 읽고 말지 내가 이렇게 골 아픈 판타지를 왜 읽고 있나 하는 자괴감을 갖게 하였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픽션은 더욱이 판타지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를 생략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판타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없애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판타지 작가들이 명심해야 한다. 다른 부분이 좀 부족하더라도 재미를 추구하도록.
‘시간을 걷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퓨처 워커’는 시간이 멈추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과 그 현상을 바로잡으려는 주인공들의 활약(?)을 그린 내용이다. ‘활약’이란 말 뒤에 의문을 표한 까닭은 그들의 활약이 독자가 바라는 만큼은 아니라는 뜻이다.
코어(The Core)라는 영화를 보면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서 기상이변이 속출하며 온갖 재난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퓨처 워커 역시 시간이 멈춤으로써 미래가 오지 않고 과거가 현실과 가까워지면서 갖가지 혼란이 벌어진다.
‘퓨처 워커’에는 거의가 ‘드래곤 라자’에 나왔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두뇌를 담당했던 칼 헬턴트, 단순무식에 무용을 담당했던 샌슨 퍼시발, 뛰어난 도둑놈 자크, 이슬람 문화를 연상시켰던 전향한 자이펀 간첩 운차이 발탄, 바이서스 왕국의 반역자 할슈타일 후작, 드라큘라 시오네 등인데 이들은 곁가지로 나오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야기의 주류를 이룬다.
비바체라는 미들네임을 가지고 있는 <미 V. 그라시엘>은 시간을 걷는 퓨처워커이다. 무녀로 불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미들네임이 라르고인 <파 L. 그라시엘>은 미의 동생이다. 파는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상단무사 쳉은 미의 연인인데 감정결핍자이다. 자이펀 선장 신차이 발탄은 서펀트를 목검으로 뚫어버리는 실력자로 바이서스로 전향한 간첩 운차이의 사촌형이다. 이시도 사이록은 신차이 선장의 배에서 일등항해사를 하고 있는데 잘만 살리면 대단한 활약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 캐릭터다.
그 외 자이펀 국방대신 함, 부활한 시인 파하스, 신스라이프 등이 나오는데 구성이 탄탄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제 역할을 잘 해내는 편이다. 하나 짚어야 할 것이 신스라이프다. 이야기의 핵심부에 해당되는 인물이면서 활약은 미미한데 ‘퓨처워커’가 어렵고도 심오한 작품이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좋다’거나 ‘실망스럽다’는 식으로 호불호가 분명 갈리지 싶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작에 비해 실망스러울 수는 있으나 일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이정도 수준의 판타지 소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출간한 지 무지 오래 된 작품이지만 아직 이정도 수준에 근접한 작품은 거의 못 본 듯싶다. 판타지 마니아라면 실망할 각오를 하고서라도 읽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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