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읽었던 책 가운데 괜찮은 작품을 꼽으라면 열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작품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이다. ‘소설 동의보감’은 독자에게 읽는 재미와 함께 유익함까지 선사해주는데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대충 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몰랐던 일인데 이 작품이 고전소설(古典小說)이냐 아니냐의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설 동의보감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교육을 하면서 고전소설이라고 가르친 것이 발단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의 경계선이 모호하긴 하지만 그래도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이전은 고전소설, 이후는 현대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소설 동의보감은 현대소설이 맞다. 고전의 향기가 물씬 풍기다보니 생겨난 문제일 것이다. 그만큼 작품이 괜찮다. 실제 역사와도 상당 부분이 일치하므로 역사공부에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된다.
‘소설 동의보감’은 의서(醫書)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책 말미에 이진섭 기자(책에는 조선일보 출판국 기획위원으로 소개되어 있음)의 발문으로 작품의 히스토리가 나오는데 원래는 춘·하·추·동 4권으로 기획되었으나 저자인 이은성 작가가 중간에 작고하면서 상·중·하 3권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뒷문을 열어 놓은 듯 작품의 마무리가 허전하다.
발문을 보면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이 모두 이은성 작가의 작품에 대한 욕심 때문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선 감사한 일이나 정작 작가 자신이 그토록 힘들어했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 작품을 베이스로 드라마가 몇 편 제작되었는데 김무생 주연의 ‘집념’, 전광렬 주연의 ‘허준’, 김주혁 주연의 ‘구암 허준’이다. 전광렬이 주연을 맡은 ‘허준’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고, 김무생, 김주혁은 대를 이어 허준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설 동의보감(상)은 조선시대 신분제도에 관한 부분과 허준이 신분차별을 벗어나기 위하여 의원의 길에 들어서는 장면을 그린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천한신분에서 면천하는 방법은 내시가 되어 오르고 올라 종이품 상선이 되는 방법과 어의가 되어 정삼품 내의원정이 되는 길 뿐이다. 한때 내의원에 있었다는 삼적대사 김민세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들은 허준은 의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소설 동의보감(중)에서는 김민세로부터 면천의 비결이라며 건네받은 ‘의지일생 묘법존심(醫之一生 妙法存心)’의 참뜻을 실천하는 허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허준은 ‘의지일생 묘법존심’을 ‘의원으로 나아가는 길은 따로 묘법이 없고 온갖 비방은 마음속에 있다’라고 뜻풀이를 하면서 ‘마음속’이란 환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일컫는 말임을 짐작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원 취재차 한양으로 가던 길, 충북 진천 인근 어느 주막에 들었던 허준은 한밤중에 환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주막에 묵었던 모든 의원들이 모른척하는 가운데 허준은 왔던 길을 10여리 되돌아 환자가 있다는 버드네 마을로 가서 환자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대목은 ‘의지일생 묘법존심’이 발현된 것으로 소설 동의보감의 가장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 부분은 허준을 따라 나섰던 의원인 정상구와 우공보가 ‘내적갈등’을 겪는 장면을 중심으로 해서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준은 다시 유의태 문하로 들어간다.
“천지신명과 스승님은 제 맹세를 들어주소서. 만일 이 허준이 베풀어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잠시라도 배반하거든 저를 벌하소서. 또 이 허준이 의원이 되는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 이들을 구하는데 게을리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저를 벌하소서.” 제자의 공부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내놓은 유의태의 주검 앞에서 허준은 통곡하며 이렇게 맹세한다.
소설 동의보감(하)에는 취재에 입격한 허준의 순탄하지 않은 궁중생활이 담겨있다. “난 병을 볼 뿐 병자의 신분을 보지 아니하고 그 병세를 구할 뿐 그 대가로 내 영예를 탐하지 아니하리라” 허준의 다짐은 많은 갈등을 야기 시키고 그 와중에 허준과 뜻을 같이하는 벗들도 생긴다.
소설 동의보감(하)는 작가가 갑작스레 작고함으로써 애매하게 끝을 맺는다. 의서편찬에서 책의 제목을 ‘동의보감’이라고 하겠다는 구상만 담겨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이 ‘동의보감’이어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포커스가 동의보감이 아닌 저자인 허준에 맞춰져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싶다. 허준하면 동의보감이고 동의보감 하면 허준인 것을. 고전(古典)의 향기가 풍기는 ‘소설 동의보감’을 꼭 읽어야 하는 작품으로 추천한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아니, 아직도 이 책을 안 읽었어요?”라는 말 듣기 전에 얼릉 읽고 진즉에 읽은 척 시치미를 뚝 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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