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햇빛이 좋은 오후에 턱을 괴고 창밖을 보니 남녀 한 쌍이 서로의 사랑을 과시라도 하듯이 부둥켜 안고 거리를 걷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니 사랑표현엔 젬병인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첫사랑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냥 흘러가버렸고 여태 결혼한 아내만을 쳐다보고 살았으니 나는 아무래도 사랑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듯하다.
누구보다도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도 여태 탐탁할만한 로맨스나 러브스토리 하나 없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저 혼자만 쓸쓸히 쳐다보다 사라지는 그림자일 뿐.
여자를 잘 모르다 보니 아내를 연인으로 대하기보다는 친구나 동생을 대하듯 하였고, 남들은 결혼기념일이 되면 이벤트를 한다면서 부산을 떨지만 나는 결혼을 언제 했었는지 날짜도 모르고 살아온 나날이었다. 결혼 초창기 몇 번은 결혼기념일이랍시고 선물을 해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영혼 없는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요사이 심심파적으로 글이란 것을 쓰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아이들을 나의 잣대를 기준삼아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했었다는 반성심만 무럭무럭 생겨난다.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만 보면 새벽기도 오는 사람들 가운데 부부가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새벽길을 걷다보면 많은 부부들을 만날 수 있다. 틀림없이 어느 교회로 새벽기도 가는 것이리라.
거리를 걸었다. 오늘 별거 중인 아내로부터 과일이 먹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끓고 잠시 생각 속에 잠겼다. 이윽고 과일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이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의 변형임을 깨닫는다. 나는 그녀의 향기 속에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나를 숨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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