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은 인체에 해로운 각종 독을 중화해주고 열을 내리게 하는 작용을 하며 갱년기에 좋다고 알려졌다. 아내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칡즙을 짜서 가져올 수 있냐는 것이다.
예전에 직장 동료들과 송강동에 있는 산에 가서 삽과 괭이로 하루 종일 직접 칡을 파내어 그것을 칡즙으로 내려 각각 백 봉지씩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때 칡즙이 갱년기에 좋다는 말이 얼핏 있었는데 아내가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자 칡즙이 좋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전화를 한 것이다.
무려 일 년 이상 얼굴도 보여주지 않던 아내가 당부하는 것을 보니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한 달 전부터 아내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샴푸며 비욘드 화장품 등을 사달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칡즙을 시킨 것이다.
나와 떨어져 살면서 고생이 심해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는데 갱년기뿐만 아니라 식사에 문제가 와서 피부병도 생겼다고 했다. 영양소 결핍에다가 면역력이 떨어져서 생긴 염증이라고 병원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문제도 있고 아내의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을 빌미삼아 새로운 관계로 유도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한의사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몸이 더 상하기전에 손을 쓰자며 빨리 데리고 오라신다. 한의사 선생님은 근 2년간 우리 부부의 재결합을 바라며 좋은 말씀을 아끼지 않았던 고마운 분이다.
“민석씨는 또 하나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냈어. 축하해.”
아내와 토요일 열한시 한의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나는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열한시가 되기 전에 한의원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지금 잠에서 깨어났으니 약속시간을 오후 두시로 연기하잔다. 나는 겁이 덜컥 나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괜찮다면서 그래도 오긴 오는 모양이라며 좋아라하셨다.
오후 두시에 한의원 밖에서 아내를 만나 들어왔다. 선생님은 아내에게 지금까지의 일은 들어 알고 있다고 이야기를 건네면서 마음을 편안히 풀어주신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진맥하더니 상하게 나쁘진 않아 다행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칡즙이 음식을 자주 섭취하고 뚱뚱한 사람에게는 좋지만 아내같이 마른 체형에게는 처음 몇 봉은 좋으나 그것이 지나면 효과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피부병은 영양결핍이나 면역체계가 안 좋아져서 생긴 것인데 근본적으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니 식습관을 바꾸는 것이 빠르지 수술은 그리 타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의 절반 정도만 몸이 삼해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서 점심 식사하러 갔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켜놓으니 서로 마주 앉아 있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싶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중요한 매듭은 풀린 셈이다. 칡즙의 효능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이렇게 아내와의 관계를 중화 시켜놓았으니 과연 칡즙은 칡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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