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전 22승 9패 승률 0.710
5월 1일 기준 두산베어스의 성적표이다. 뒤에는 성적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초반부터 1위를 질주 중인데 참 흥미로운 점이 있어 오늘 이야기의 주제로 삼았다.
두산은 SK와이번스의 최정이나 로맥처럼 홈런을 펑펑 때려내는 타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LG트윈스처럼 투수력이 빵빵한 것도 아니다. 모기업의 재정이 어려워 외부 FA를 제대로 영입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FA로 선수 유출이 심한 편이다. 그런데도 출중한 성적을 올리고 있으니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탈G효과’ 라는 말과 ‘믿고 쓰는 두산’이라는 말이 있다. ‘탈G효과’란 LG에서 부진한 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 이후 포텐이 터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고, ‘믿고 쓰는 두산’은 두산 출신 선수는 이적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두산이라는 팀은 참 신기한 팀이다. 어느 것 하나 특출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강팀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산이 강팀인 이유를 투타의 발란스가 좋아서라고 하는데 그 말도 맞지만, 나는 그 이유를 하나 더 찾은 것 같다.
올해 두산 출신 민병헌 선수가 롯데자이언츠로 이적을 했다. 4년 총액 80억에 FA계약을 했는데 롯데 팬들은 모두가 반기는 분위기였다. 민병헌 선수는 포지션이 중견수로 수비가 일품이고 타격도 좋다. 게다가 발도 빠른 편이라 쓰임새가 아주 많은 선수이다. 더군다나 믿고 쓴다는 두산 출신이니 더할 나위가 없다.
이 민병헌 선수가 소통을 참 잘한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민병헌 형이 밥도 많이 사준다”라고 새내기 한동희 선수가 증언한 바도 있다. 외야수인 민병헌 선수는 시합을 할 때 수비 강화를 위해 내야수와도 많은 소통을 한다.
민병헌 선수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텍사스 안타는 누가 처리할 것인지, 중계 플레이 호흡은 어떻게 맞출지, 발 빠른 타자가 나왔을 때 내야수가 전진수비를 하니 앞에 있는 타구는 내가 잡겠다는 등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외야수와 내야수가 소통을 많이 할 때 팀이 강해진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참고기사]
나는 민병헌 선수의 인터뷰 기사에서 두산이 강팀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로 끊임없는 소통이다. 참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은 것이 소통이다. 두산이 아닌 다른 팀도 불펜에서 파이팅을 외칠 테고 대화도 많이 나눌 것이다. 그러나 대화만 주고받으면 소통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어느 매체의 기사인지 잊어버렸는데 다른 팀에서 두산으로 이적해온 모 선수가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시합 중에도 선수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요.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런 대화를 쉼 없이 나누는 것을 보고 두산이 왜 강한지를 알 수 있겠더군요”
이런 분위기는 한 두 선수가 주도해서 될 일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봐야 한다. 오래전 선배들이 그런 분위기를 형성해서 대물림시킨 두산만의 문화인 것이다.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을 보고 ‘공부를 할 줄 안다’고 하는데 딱 그 짝이다. 공부를 ‘잘한다’가 아니라 ‘할 줄 안다’라고 표현한 것이 중요하다. 두산 선수들은 시합을 할 줄 안다. 두산의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승부처가 어디인지를 알고 하는 느낌이 든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해야 할 시점에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상대방이 약점을 노출하면 악착같이 그 점을 파고든다. 얄미울 정도이다. 분위기가 처진다 싶으면 일부러 사고를 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두산을 화수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토양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으니 끊임없이 훌륭한 선수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똑같은 프로선수라 실력은 큰 차이가 없다. 마음가짐이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면 내가 도와주고 싶다”라는 민병헌 선수의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좀 잘하자 이노무시키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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