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보문산과 중앙시장 나들이

보문산 전망대에서 본 대전시내
보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전시내 전경.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 아침에 한의원하시는 선생님 뵙고 잠시 담소를 나누다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하는 거리전도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일정을 마감하려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어머니께서 보문산 가서 점심 먹고 중앙시장으로 해서 대전역 재래시장에 들러보자고 하신다.

나는 처음에는 반대하였다. 아침에 한의원에 가면서 마라톤 하는 선수들이 갑천길을 따라 줄줄이 뛰는 것을 실컷 구경한데다 자동차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열어놓고 실컷 달리고 난 뒤라 어디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아서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꾸 졸라대니 안 갈 수가 없어 길을 나서기로 하였다.

집 앞에서 802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타고 보니 승객이 많지 않아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을 잘 보려고 유리창을 열었다. 유리창을 여니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많이 변해버린 대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 주위나 돌아다니며 운동이나 하지 어지간해서는 멀리 나가지 않다 보니 보문산에 가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그 사이 대전은 많이 변해있었다. 보문산으로 가는 이 길을 다닌 것은 아내가 방과 후 선생님으로 있을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한 십 년은 된 것 같다.

대전이 이렇게 변한 것을 알아차린 것은 아마 내가 버스 안에서 보아서 그럴 것이다. 토요일이라 도로는 한산하였다. 내 어린 시절 보문산은 대전의 중심산이었다. 대전에 높은 산이 없다 보니 그저 보문산이 제일 컸고 근처에 있는 대전고등학교는 대전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교였던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삼성초등학교에서 문창동으로 전학해왔으니 이 보문산은 나에게 어린 시절의 전부와도 같았다. 가재 잡고, 곤충채집도 하고 당시 집 근처에 있던 이 조그마한 보문산이 나와 친구들에게 제일의 놀이터였다.

지금은 보문산의 케이블카는 멈춰선지 오래고 연세 지긋한 어른들이나 찾는 곳으로 변해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 보문산은 계곡에 물 흐르고 겨울 아침이면 형들이나 어른들이 냉수마찰하고 운동도 많이 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아는 사람들끼리 보리밥이나 먹으러 다니지만 원래 보문산은 홍합국이 유명하였다. 보문산에 딱 하나 있는 절은 당시 주위에 사는 분들의 신앙의 중심지였고, 그 주위로 점집들이 많이 있어 점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리 높진 않아 조금만 오르면 도달하는 전망대에서는 대전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보문산은 대전의 명소였던 곳이다.

보문산에서 보리밥을 먹고 나서 어머니는 온 김에 인동을 거쳐 중앙시장으로 걷자고 하셨다. 막상 가보면 그리 먼 길은 아니어서 그러자고 하고선 어머니는 앞에서 걷고 나는 뒤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걸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 보았던 풍경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마음속에서 어린 나의 모습이 손짓하고 있었다.

대전 중앙시장
대전역 앞 중앙시장.

그럭저럭 걷다보니 어느새 중앙시장에 도착하였다. 근 삼십분 정도 걸어왔던 것이다. 토요일이라 거리에 사람들은 듬성듬성하였다. 일요일에도 장사한다는 몇몇 억척스런 상점들, 특히 자동차 악세사리 판매상만 몇 군데 문을 열어놓았을 뿐 나머지는 거의 문을 닫아 거리가 한산하였다.

중앙시장의 어느 커튼집에 들어가 커튼가격을 알아보며 아파트 바깥 베란다 유리창에 커튼을 달 계획을 짜는 어머니를 보니 암만해도 올겨울에는 바깥 베란다에 난로를 들여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어탕용 미꾸라지를 사고 나 좋아하는 호박씨 사고 우리는 중앙시장에서 빠져나와 대전역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사람들이 빽빽했다. 중앙시장이 사실 이곳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 좌판이 쫙 깔려있었다.

대전역 재래시장
대전역 근처 재래시장.

사실 이곳은 예전의 대전역 근처 여인숙 골목이라는 이미지와 분위기도 눅눅해서 물건은 좋지만 아는 사람 아니면 꺼리는 곳이다. 이곳은 나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곳으로 예전에 이야기했던 대전역 뒤편 철도운동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우리는 잘 아는 바닷고기 파는 집 좌판에 앉아 주인아주머니 홍어 다듬는 소리 들어가면서 주위 사람들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주인아저씨가 안 보이기에 어디 가셨나 물어보니 주인아저씨는 엄니 다방에 가셨다고 한다.

“요사이에도 다방이 있나요?”
“그럼요, 엄니 다방이 있죠. 엄니 품처럼 좋으니 매일 가요.”
“그렇게 아저씨가 좋아하면 아주머니 고생이 심하시잖아요.”
“아니요, 아저씨는 새벽 네시 반에 와서 좌판 열어놓고 장사하다가 한잠 자러가요. 매일매일 그렇다보니 피곤이 누적되어서 많이 힘들어하는데 엄니 다방에 가서 쉰다고 무슨 말 못하죠.”

그러면서 요사이 젊은 여인들이 시집가기 싫어하는 이야기와 남자들 나이 들어 집에서 아내와 딸들을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 속에서 나와 아주머니 손님들은 웃음을 한 바가지씩 퍼 담았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괴롭히는 행동이 남자들을 멀리하게 한다는 이야기에서 내 아내와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쑥스러워졌다.

아주머니는 이제 세상이 바뀌어 남자도 아내에게 잘하지 못하면 혼자 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둘인데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정말 걱정됐다. 이제는 남자도 내조의 왕은 못되더라도 왕자는 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세상이 변해가듯이 사람도 세상과 발맞추어 변하지 않으면 언제나 구석기시대를 면하지 못하는 현실의 상황에서 항상 시대에 맞추어 뛰어야했던 우리네 인생을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띨 뿐이다.

김민석
Copyright 덕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덕구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하는 조건으로 기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으나, 무단전재 및 각색 후 (재)배포는 금합니다. 아래 공유버튼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