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자인 내가 이런 글을 쓰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작업장 뒤에 서있는 약사여래상을 보며 빌고 또 빌었다. 나의 병 좀 가져가달라고.
지금은 운동과 격심한 노동으로 나를 단련시켰기에 강한 체력이 되었지만 나는 원래 체력이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었다. 내가 이 직업 저 직업 전전해야 했던 이유 중에 체력의 손실로 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냥 쉬운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가정이란 보금자리에 들어가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겠다는 욕심으로 힘든 일을 선택했다. 그런데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나는 매일이 죽을 맛이었다. 처음에야 체력이 받쳐주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력이 고갈되면 힘겨워 하다가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 패턴이었다.
이번에 시작한 일도 그리될 것은 뻔하다. 그래도 버틸 때까지는 버티라는 선생님의 강권에 삼년을 버티고 있다. 무리한 일을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차에 광택을 내는 일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어디 기술이나 제대로 배워 사업을 해볼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 월평동 중고차 시장에서 천막만 치고 광택 작업을 하는 일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광택일이란 것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식사시간만 빼고는 죽어라 일만 하는 곳이다. 그렇게 토요일 저녁까지 일하고 일요일 하루만 쉰다. 그리고 빨간 공휴일은 8월 15일 광복절만 쉬는 곳이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육 개월이면 일손을 놓고 나가는 곳이다.
나는 그렇게 힘들지도 모르고 한번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당시 나이가 49세였다. 일은 힘들었다. 아침 일곱 시에 도착, 커피 한 잔에 10분, 그러면 축구선수 출신이었다는 나보다 젊은 사장이 나와서 함께 차에 광택을 내는 일을 시작한다.
사람은 나와 사장 둘뿐. 사장은 차에 광택을 내고, 나는 약을 묻힌 걸레로 실내를 닦아내는 일이다. 차는 쉴 새 없이 들어온다. 사장이야 돈을 많이 벌어 좋지만 초짜인 나는 많지도 않은 월급만 받고 처리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났다.
점심이면 근처 식당엘 가는데 작업장 바로 뒤에 약사여래상이 서있는 조그마한 암자를 거쳐 간다. 옛날부터 있던 절이었는데 스님은 돌아가시고 어느 가족이 그 집을 차지하고 사는 곳이다.
나는 점심 식사를 하러 오고 가며 그 약사여래에게 합장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했더니 고된 노동을 견뎌내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말이야 힘들어 죽겠다고 하지만 몸은 단단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해 겨우내 눈이 와도 반팔만 입고 일했을 정도이다.
그 약사여래상은 항상 혼자서 하늘을 떠받치고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내가 건강하게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약사여래의 도움이라고 믿고 있다. 내 머릿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던, 한 손에 약병을 들고 서있는 약사여래상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건강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부처님의 법은 위와 아래로 대중 중생의 고통 속에서 고통을 건져내는 것이란 것을 오늘 약사여래상에서 떠올려본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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