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고백하지만 난 고은 선생이 그렇게 대단한 시인(詩人)인줄 몰랐다. 아니 처음엔 시인인줄도 몰랐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고은이란 그의 이름 두자가 뉴스에 등장해서 고은 이란 시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바닥인 나도 노벨상이 얼마나 대단한 상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고운 최치원 때문에 고은 시인의 이름을 쉽게 연상 할 수 있었는데 노벨상과 고운 최치원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름이 고은이다.
뒤에 ‘만인보(萬人譜)’라는 연작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난 머리가 나빠서 그런 시 같지도 않은 시는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세상 시인 모두를 아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모른다고 하여 그가 시인이 아닌 것이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동종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내가 모른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벨상은 추천을 받아야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해마다 끈기있게 추천하는 사람들이 있고 보면 일단 그는 대단한 시인일 것이다. 지치지도 않고 추천하는 사람들도 대단하고.
하여간 그러한 고은 시인이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시인의 고약한 행실을 담은 시(詩) 하나가 발표되면서부터인데, 이는 요즘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괴물’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이름이 알려진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다. En이 누구인지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구라도 노벨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노털상’ 때문이다.
그런데 최영미 시인이 하나는 몰랐던 것 같다.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라며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이라고 했지만, 나의 생각으론 그의 똥물을 마신 대중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
각설하고, 이번에 새로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으니 최영미 시인 이전에도 고은 시인에 대한 고발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문열 작가의 ‘사로잡힌 악령’이다. 사로잡힌 악령은 그의 단편집 ‘아우와의 만남’에 실려 있는 단편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실려 있었던’이라고 해야 한다. 1994년 12월 발행한 1판 1쇄와 1995년 1월 발행된 1판 2쇄에만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단편 ‘사로잡힌 악령’의 주인공이 고은 시인을 연상시킨다고 고은이 소속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문제 삼자 결국 목록에서 제외하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해당되는 책을 소장하고 있지 않아 읽어볼 기회는 없었으나 인터넷에 알려진 내용을 보면, ‘사로잡힌 악령’은 한 시인의 1970년대~1980년대의 행보를 다룬 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한겨레 1995년 1월 18일자 기사에는 “법조인을 1인칭 화자로 내세워 그의 눈에 포착된 한 승려 출신 시인의 행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면서 좀 더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환속승려인 시인은 한때 유명한 고승의 상좌이자 시인이다. 자신의 이름값을 이용해 문화예술계 명사들과 사냥하듯 교분을 틀고 문학을 지망하는 여성과 친구의 부인 등을 마구잡이로 농락하는 등 ‘악마성’을 과시한다.
그러던 그가 자신이 본래 속했던 순문학 진영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자 갑자기 민주투사의 탈을 뒤집어쓴다. 1970~80년대 저항문학의 선두에 섰던 그는,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등 상황이 바뀌자 또 다시 저항시인의 탈을 벗어던진다.”
대략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자칫 사장(死藏)될 수도 있었던 작품하나가 미투 운동에 힘입어 부활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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