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여자 이야기,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

미스 슬로운

요즘 국내개봉관에서 ‘신과 함께’나 ‘1987’이 절찬리에 상영 중이라는데 나는 절찬의 대열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하여 집에서 편안하게 영국 감독 존 매든 (John Madden)이 만든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을 감상했다. 신년특집이라며 케이블방송에서 방영해준 것이다.

조나단 페레라가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할 때 썼던 시나리오라고 하니 어쩐지 각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한국에서 쓴 탓인지는 몰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중에 국내 모 여성 정치인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뻔뻔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ㅋㅋ

미스 슬로운은 미국의 정치영화다. 정치영화하면 먼저 로비스트가 떠오르는데, 미스 슬로운 역시 로비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다. 개성이 강한 로비스트와 비열한 정치인들이 꿍짝을 이뤄 이야기를 끌어가는 흔하디흔한 스토리이다. 이 영화가 제법 볼만했던 것은 주인공으로 등장한 제시카 차스테인(Jessica Chastain)의 연기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주인공 엘리자베스 슬로운역으로 등장한다. 어찌나 얄밉게 행동하는지 캐스팅 하나는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탐사대장 멜리사 루이스 역으로 나왔던 제시카 차스테인은 참 멋졌는데, 동일한 인물이 완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 미스 슬로운을 감상하면서 느꼈다. 새삼 그녀의 연기력에 찬탄을 보낸다. 마션 후기는 여기서 볼 수 있음!

나는 뻔뻔한 사람을 싫어한다. 얼굴 두꺼운 사람은 그냥 상종 자체를 하기 싫은데 아마 체질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때문에 혹여 누군가 옳은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그가 뻔뻔한 사람이면 외면한다. 뻔뻔한 사람 편들어 줄만큼 나의 마음이 너그럽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은 뻔뻔함의 정점에 있는 여성 로비스트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쯤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비열한 사람인데 말빨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나도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피곤해서 혼났다.

총기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고용된 승률100%의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총기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불법적인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도와주는 팀원까지 이용하는 악랄한 행동도 불사하는 이기적 인간의 전형이다.

총기규제법안에 대해서 찬성은 선(善)이고, 반대는 악(惡)이라는 플레임 안에서 영화를 감상한다면 슬로운은 멋지고 유능한 로비스트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승자는 상대보다 한발 앞서서 회심의 한방을 먼저 날려야 해요.”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후에 대책을 강구해야죠.”

엘리자베스 슬로운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 그녀가 지껄이는 멋진 대사들은 그녀가 저지른 온갖 비열한 수법들을 정당화 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 감상자로서 나의 의견을 말하라면, 슬로운이나 그 반대진영이나 모두 자신들의 이득만 챙기는 사회 악(惡)인 독극물로 보인다고 말하겠다. 독극물들끼리 서로가 상대방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주장질하는 넌센스 같은 영화였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감상평이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악의 무리보다 선을 가장하여 나쁜 짓을 일삼는 좀 덜 나쁜 무리들이 어쩌면 더 해로운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은 속이 보이지 않는 뚜껑 닫힌 약병의 극약이기 때문이다.

총기규제법안에 반대한 이들이 몰락한 것은 그들이 뚜껑 열린 약병의 극약이기 때문이지만, 사실 뚜껑 열린 약병의 극약보다 뚜껑 닫힌 약병의 극약이 더 위험하다. 속이 보이지 않으면 경계심이 생기지 않거나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문구가 생각났다. 내가 보기에 양쪽 모두 나빠 보였는데도 그런 문구가 생각난 까닭을 모르겠다. 아무래도 뻔뻔한 슬로운의 행태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뻔뻔한 것들은 정말 싫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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