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재미있는 책 한권 소개한다. 조반니노 꽈레스키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쓴 ‘신부님, 나의 신부님’이다. 이 책은 여러 번역가가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우연찮게 지인의 서재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알게된 내용이다.
확인해보니 번역된 제목도 여럿인데 가장 알려진 것이 서교출판사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었다. 내가 읽었던 책은 문학창조사(번역, 최국진)에서 1982년 출간한 ‘신부님 나의 신부님’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양심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것이 밖으로 나타날 때, 이 땅에는 공산주의라는 낱말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장에 바로 나오는 문장이다. 이 작품을 압축시키고 압축시키면 이렇게 한 문단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주인공 돈 까밀로 신부는 거짓말도 잘하고 욕도 잘한다. 힘도 세고 주먹도 잘 쓴다. 가만있으면 좀이 쑤셔 마을에 일어나는 사건마다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만 결국은 멋지게 해결하고 마는 괴짜 신부님이다.
돈 까밀로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빼뽀네는 공산당 두목이다. 이 이태리 빨갱이 빼뽀네는 공산당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방해를 하는 돈 까밀로 신부와 항상 티격태격 싸움을 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늘 으르렁거리지만 실제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사이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친구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돈 까밀로와 빼뽀네 사이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중립을 지킨다. 자신을 따르는 신부라고 하여 무작정 편들어주지도 않고, 자신을 부정하는 공산당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바 없이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충고를 공평하게 나누어주는데, 이 때문에 빼뽀네는 괴롭다. 양심과 공산당 이념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뽀오강 유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돈 까밀로 신부와 공산당 두목 빼뽀네의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21개의 이야기를 시트콤처럼 담아 놓은 것이 조반니 꽈레스키의 신부님 나의 신부님이다.
오래전 어느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웃음코드가 변했는지 처음 읽었을 때처럼 배꼽을 부여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시신경을 타고 전해지던 잔잔한 감동은 여전하다.
요즘처럼 마음이 갈 곳을 잃은 시기에, 비록 공간적으로나 시기적으로 간극이 크다 보니 완전한 동화는 힘들지라도 읽어보면 갈 곳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음 간수 잘 하시길. 겨울철에 잃어버리면 찾기도 힘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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