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기다리고 있었어

회상

마라톤이 있던 날, 선생님은 밤이 되도록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마라톤에 참가했다가 느지막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어오는 나를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민석아, 너 뭐하고 지금 들어 오냐?” 나는 멋쩍어서 “선생님…”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너는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겠지” 그 소리에 나는 고개 들어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나는 공부에 별 취미가 없던 학생이었다. 특히 수학, 물리, 화학 등 계산하는 것만 보면 머리가 움찔움찔하면서 무엇인가 나를 꽉 막는듯했다. 그때가 고3이었다.

나는 학교에 들어올 때도 문제가 많았지만 다니는 중에도 선생님들뿐 아니라 학부모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정원이 아닌 후기로 들어온 120명 중 하나라는 이유로, 그리고 깡패처럼 거칠다는 이유로.

나는 그렇게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 대한 개념조차 갖지 않고 고3이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면 직업훈련소에 보낼 생각을 하고 계셨다. 내 성적이 15등급에서 14등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도 잘해야 전문대학이고 그나마도 겨우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기다림 때문에 내 인생이 변할 줄이야.

몽둥이를 든 무술 고단자라도 되어야만 학생을 지도할 수 있었던 시기에 별명이 여우였던 우리 담임선생님만은 완전히 부드러움과 온화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화를 내는 법이 없고 매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렇게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선생님을 보면서 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에게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대학에 관해서. 어느 대학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4년제면 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정보를 간추려보니, 각 과목당 교과서한권, 참고서 한권, 그리고 영어나 수학 중 하나 선택, 그러면 승부가 난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나를 문(文)이라는 세계로 가는 길이었음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물론 영어, 수학 중 수학은 장시간을 요하므로 당연히 포기했다.

고3수업은 대학입시를 위한 것이었다. 수학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자기 담임 과목을 포기한 놈은 너 하나뿐이라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그때부터 나는 여섯시면 학교에 나와 열한시까지 수업에 동참했다. 항상 학교에 오면 공부를 제일 잘하는 내 친구 한 명만 와 있었다. 그리고 다음이 나였다.

교과서와 참고서 각 한권을 모두 외우자가 내 고3때의 목표였다. 물론 결국에 가서는 다 외었다. 그렇게 나는 고3을 보내면서 나는 야간자습시간인 11시까지 항상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업시간에도 담임선생님은 항상 나를 보고 웃으면서 자기 담임 과목을 포기한 학생은 너밖에는 없다면서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러나 나는 항상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선생님에게 좋은 제자는 아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좋았던 모양이다. 지금도 전화하면 “너는 나 죽으면 보러 오겠지? 너니깐, 안다. 민석아” 그러신다.

하여간 1년간의 보상으로 점수가 무려 75점이나 올랐고, 나는 학교에서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고3공부, 특히 야간공부를 하며 보냈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느낌들은  지금도 나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든다. 특히 학교 내 버드나무 밑의 저녁은 항상 힘들었던 고3의 힘든 시절을 위로하곤 하였다.

버드나무와 나의 담임선생님. 나는 4년제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내신만 아니었으면 더욱 놀랄 일을 만들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그날이후 내 성적과 대학을 가지고 다니시면서 1년 동안 후배들에게 자랑하고 다니셨던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오늘 괜시리 선생님에게 전화 하고 싶어진다. “민석아, 너는 나 죽으면 오겠지?” 그 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나는 마음속으로 떠올려본다. 그날 저녁 마라톤에서 나를 부르시던 선생님 “너 기다리고 있었어. 민석아” 하시던 그 말씀을.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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