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날씨는 무척 더웠죠. 나는 아침 아홉시부터 김치와 단무지 그리고 양파를 반찬그릇에 넣어두고 있었죠. 저는 경력 2년의 선수 소리 듣는 중국집 배달부죠. 일명 짱깨라고 합니다. ㅋㅋ 이집 저집을 다니다가 요번에는 어느 대학 앞의 함가네라는 중국집에 취직한지도 벌써 보름이 되어가네요.
아침 반찬이 준비되면 아침식사를 하고 한 열한시까지 자유시간이죠. 지금에야 시간 구분 없이 배달주문이 들어오지만서도 그 시절에는 아침에는 중국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어요.
직원이라고는 나하고 젊은 청년 둘 그리고 나보다 나이 많은 부산아저씨 이렇게 네 명뿐이었던 것 같아요. 한 젊은이는 서울에서 삐기로 생활하다가 애인 따라 내려왔고, 나이 먹은 아저씨… 아니 형님은 부산 토박인데 고물장사를 하던 분 이었죠. 친구 세 명이 모여 큰 고물상을 사려다가 친구하나가 배신해서 돈을 다 잃어버린 분이죠.
그 형님, 배신한 친구를 죽이려고 삼년을 쫓아다니다가 강원도에서 잡았는데, 인과응보인지 완전히 폐인 되어 있어 밥 한 그릇 사주고 왔다 하네요. 불쌍하더라나요.
이 형님이 살면 뭣하나 싶어 죽으려고 강원도에서부터 무쏘차를 최고 속도로 운전해서 달렸는데 차가 고장 나 멈춘 곳이 여기 대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온 곳이 함가네죠. 부산대학 다니는 딸아이에게 항상 용돈이며 등록금 보낸다 하더라고요. 딸아이를 무척 사랑한다고요. 외동이니 왜 안 그렇겠어요.
근데 이 함가네 사장이 당뇨병에 무슨 자선 사업하는 기분만 가진 돈 많은 분이에요. 점심 식사시간이 되면 주문이 밀려오는데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써요. 제가 글씨를 못 알아보겠다고 하니 “니가 읽지, 내가 읽냐?” 그러는 거여요. 화가 나더라고요.
거기다 점심식사는 물 말은 밥에 김치 하나만 먹게 해요. 도통 배달부들에게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하기사 오는 배달부마다 금고 털어가, 자기 외동딸에게 치근대, 싫기도 하겠지요. 하여간 그곳에 있는 내내 물 말은 밥에 김치 반찬만 먹은 것 같아요.
근데 이 대학생들이 대단해요. 중국 음식을 보통 많이 시키는 게 아녀요. 정신 사납게 시키다보니 내가 이 대학교 학생들을 다 먹여 살리는 것 같더라고요. 어떨 때는 자동차 타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만 원짜리를 내 앞에서 흔들면서 달려요. 나도 남 못지않은 대학출신이지만서도 참 어지간하더라고요.
그렇게 배달생활을 여름에 한 세 달간 하면서 웃지 못 할일은 제가 나올 때죠. 사장이 어느 날 저희를 모아놓고 말하기를 자선사업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배달의 기운을 올리시겠다지 뭡니까. 내가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배알이 꼴렸죠.
김치에, 물 말은 밥에, 글씨도 못 알아보겠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사장님 저 내일부터 안 나와요”라고 말했죠. 그러고 다음날 그만 뒀죠. 그날이 월급날 이었거든요. ㅎㅎ
지금도 생각하면 쉬는 시간 중국집 문 앞에서 서로 떠들던 때가 그리워요. 담배 맛이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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