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작가가 2006년에 발표한 ‘호모 엑세쿠탄스’를 나만의 독서습관에 의해 다시 읽었다. 나만의 독서법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참고하시라!
호모 엑세쿠탄스는 처음 인터넷에서 연재를 시작했다가 중단하고, 2006년 문학계간지 ‘세계문학’에 연재한 것을 3권의 책으로 묶어 민음사에서 출간한 것이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정치색이 짙은 작품이다. 그래서 이문열 작가는 “소설은 소설로 읽어 달라”는 글을 책머리에 첨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에 현실 정치의 문제를 수용하는 일을 무슨 괴변이라도 되는 양 핏대를 세우는 이들일수록 지난 시대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소설은 어김없이 정치적이었다.”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들어가는 글만으로도 어떤 내용의 책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짐작대로 ‘호모 엑세쿠탄스’는 좌파와 386운동권, 해방신학의 모순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묘사한 소설이다. 왜 ‘소설은 소설로 읽어 달라’는 말을 덧붙였는지 알 듯하다.
애당초 픽션을 논픽션으로 생각해본 적 없거니와 설령 ‘혹’하는 내용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작가들의 노림수에 넘어갈 정도로 아둔한 편도 아니어서 별반 상관은 없지만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오로지 소설로만 보고 읽었다. 사실 별스럽지도 않은 일에 게거품을 품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더라. 그러니 뱀혓바닥을 낼름 거리며 선동하는 무리들이 판을 치는 것일테지.
10여 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던 〈해방신학, 종말론, 유대전쟁사〉등의 내용을 담은 정체모를 ‘이메일’부분이 이번엔 편하게 읽힌다. 완독은 이번이 세 번째이지 싶은데 읽을수록 쉬워지는 느낌이다. 역시 책은 여러 번 읽는 것이 낫다. 사실 처음엔 글꼴자체도 다르게 표현된 ‘이메일’ 부분이 스토리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읽기도 싫은데다가 이해하기도 어려워 그냥 넘겼었다.
군대 말년에 ‘해방신학’이니 ‘종속이론’이니 하는 것들을 외우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외우지 못하면 잠을 재우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외워야 했는데 ‘호모 엑세쿠탄스’에 삽입된 ‘이메일’이 군대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잠이 얼마나 소중한데 잠을 안 재워. 그땐 어쩔 수 없이 외워야 했지만 취미생활을 하면서조차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복수하는 기분으로 그 부분을 그냥 넘긴 거였다.
하지만 누가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번엔 자발적으로 읽었고, 문제의 ‘정체모를 이메일’을 꼼꼼히 살펴본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메일 부분이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크게 미치진 않는다. 별도의 축이라고 봐도 좋다. 아마도 나처럼 그냥 넘겨버릴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호모 엑세쿠탄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읽는 편이 좋다.
내가 독후감, 고상하게 표현해서 서평을 적을 때 자주 언급하는 말이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소설은 재미없으면 소설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 재미없는 것은 초·중·고 내내 끼고 살았던 교과서만으로도 충분하다. 역대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치고 재미없었던 작품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상(思想)이나 메시지(message)가 담긴 책이라도 재미가 없다면 나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이문열 작가의 ‘호모 엑세쿠탄스’는 반쯤 성공이다. ‘호모 엑세쿠탄스(Homo Executans)’를 우리말로 옮기면 ‘처형자’쯤 되는데 섬뜩한 제목과는 달리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거의 없는 편이다. 1편엔 살짝 선정적인 장면도 있고 해서 쉽게 읽힌다. 이 부분은 성공이다.
좌파, 운동권, 시민단체 등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담긴 부분은 괜찮다 치더라도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이메일 형태로 보내진 〈해방신학, 종말론, 유대전쟁사〉부분은 한 번에 읽기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실패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다. 내 판단으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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