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건너뛰기 – 존 그리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 존 그리샴

매년 겨울이면 생각나는 책이 존 그리샴의 크리스마스 건너뛰기(Skipping Christmas)이다. ‘존 그리샴’하면 법정소설만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포드 카운티’나 ‘하얀집’ 등 의외로 법정소설 외의 작품도 있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도 그 중 하나이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참 ‘미국스러운 스토리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게 미국스러운 것이 어떤 것이냐 물어본다면 난 설명을 못한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하게 든 생각인데, 분명한 것은 나쁜 의미는 아니다.

그저 내가 아는 미국은 자기 자식이라도 함부로 체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을 중요시 여긴다는 정도에 인주의가 팽배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간섭도 하지 않지만 시골로 가면 천사같은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품을 읽고서 왜 ‘미국스럽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의아하다. 이 작품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인데 말이다. 아마도 작품의 배경인 헴록이란 동네가 대도시가 아니어서 잠재적으로 생각하던 미국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이윤기 선생의 에세이 온 아메리카나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 한 여행과 같은 책에서 영향을 받은 탓이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와 같이 문화적 메시지가 강한 책을 읽다보면 확실히 잠재의식 속에 뭔가 각인되는 것은 있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거의 한 달이나 남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시끄럽다. 남미 페루의 오지로 1년 동안 평화봉사단 활동을 위해 떠나는 딸 블레어를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루터 크랭크는 올해 크리스마스엔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고 작정한다.

오는 카드야 어쩔 수 없지만 보내지는 말고, 선물도 주고받지 않을 것이고, 반짝이 전구로 집과 정원을 장식하지도 말고, 트리와 동네 명물인 플라스틱 눈사람 프로스티를 설치하지도 말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파티도 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하려고 미어터지는 쇼핑몰의 군중 속에 끼지도 말아보자고 다짐한다.

세무사인 루터는 그날 밤 서재에 앉아서 지난해에 크리스마스를 치르는데 썼던 경비를 계산해본다. 6천 달러가 넘는 거액 중에서 보람 있게 쓴 돈은 거의 없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기로 한 결심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루터는 누구보다 아내 노라를 설득해야 한다.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해보자고 작정한다. 루터는 크리스마스 당일에 출발하는 열흘간의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을 예약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딸이 집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아내는 그의 계획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부부는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지만, 그 부질없는 야단법석에 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만한 자부심까지 느낀다. 온 동네가 불야성이 된 가운데 크랭크 부부의 집만이 홀로 어둠에 잠겨 있다.

크리스마스를 한번 건너뛰겠다는 계획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아서 그들은 온갖 곡절을 겪어야했고, 마침내 12월 24일이 되었다. 오전 11시에 걸려온 전화 한통. 그것으로 모든 것이 무산된다.

1년 후에나 돌아온다는 딸이, 결혼 약속까지 했다는 페루 사내를 데리고 지금 집에 거의 다 오고 있다는 것이다. 크랭크 부부는 계획이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 되었다.


줄거리 적는 것을 싫어해서 역자가 남긴 후기를 정리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불편했으면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루터의 생각을 들여다 보면 일견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 루터가 느꼈던 불편함은 이웃 간에 정(情) 내지 관심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동의는 힘들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에는 기부를 당연시 생각하는 그들의 성숙된 의식과 기독교적 박애주의가 스며있다. 헴록 스트리트 같은 곳이 실제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동네가 있다면 한번 살아보고 싶다.

존 그리샴의 여러 작품 가운데 유난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이다. 읽지 않았다면 일독을 권한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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