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의 표준, 다크 메이지 – 김정률

다크 메이지
김정률의 다크메이지 2011년 개정판(랜덤하우스).

판타지소설을 리뷰 한다면서 김정률 작가의 작품을 빼놓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 판타지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점잖은 표현이고, 솔직하게 그냥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 의 준말로, 판에 박은 설정을 가진 소설)라고 하자. 양판소만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 김정률이라는 이름 석 자는 믿고 읽는 작가로 통한다.

문장력이니 문학성이니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은 교양 있는 작가의 작품에서나 할 이야기고, 김정률 작가의 작품에서 그러한 것을 찾는다는 것은 대서양에서 니모(Nemo)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교양이 밥 먹여 주냐는 듯 쉽게 써내려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김정률 작가의 작품은 다른 것은 몰라도 재미 하나만큼은 보장할 수 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재미만 보장한다는 뜻이다. 다른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일반소설이든 장르소설이든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읽고 나서 불쏘시개로 사용된다는 양판소라고 하지만 독자로선 엄연히 대가를 지불하고 읽는 책인데 재미없으면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다크 메이지〉는 최소한 본전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재미있지만 그중 ‘다크 메이지’는 김정률 소설의 방향성을 설정해준 수작이다. 아직도 김 작가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 대표작이라 하기엔 이른 감이 있으나 현재론 그런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아주 못생긴 중원 무림의 초고수가 단전을 잃어버린 채 이계로 가서 마법, 그것도 흑마법사로 살아간다는 설정을 가진 ‘다크 메이지’는 ‘데이몬’이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카심 용병단의 ‘카심’이나 ‘율리아나’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도 만들어 냈다. 이들은 김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다크 메이지 이후에 나온 작품들, 예컨대 ‘하프블러드’나 ‘트루베니아 연대기’ ‘마왕 데이몬’ 은 ‘다크 메이지’와 연계된 작품으로 다크 메이지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는지 짐작케 한다. 물론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큰 줄기로 보자면 읽어두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된다.

내용이 궁금하면 인터넷에서 ‘다크 메이지 줄거리’라고 검색해보면 될 일이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 양판소를 찾은 이라면 책 고르느라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크 메이지’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닭장에서 꿩을 찾아낸 느낌이 들 것이다. 꿩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로 그대가 특이한 것이지 내 탓이 아니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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