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TV를 보고 있는데 웬 꼬마가 나와서 “새해 행운행운 하세요!”라고 하더군요. 내가 고루해서인지 행운행운 하라는 꼬마의 대사가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렸습니다. ‘행복 하세요’가 아니라 ‘행운하세요’라니 어느 나라 문법인가요?
뒤에 확인해보니 맥도날드 CF라고 하더군요. “저 말이 맞는 말이야?” 내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딸이 뭘 그만한 일로 예민하게 구냐는 듯이 대꾸합니다. “요샌 그렇게도 사용하는 모양이지!”
SNS시대라고 하기에 페이스북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어서 나처럼 비활동적인 사람에겐 세상을 보는 도구로는 안성맞춤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도록 열심히 페이스북을 했습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짧은 말 뒤에 ‘요’를 붙여 높임말을 만듭니다. “참 이쁘다요”나 “멋있다요”같은 말인데 어느 탈북민이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북쪽의 어느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인가보다 했지요. 그런데 페이스북 친구는 일부러 사투리 흉내를 내느라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다양한 글을 올립니다. 그러다보니 지역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말들이 이리 섞이고 저리 섞이고 하다가 사투리가 아닌 새로운 문법도 생겨납니다.
요즘은 “○○ 하는 걸로”처럼 마침표 없이 글을 마무리 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ㅇㅇ하겠다”는 건지, “ㅇㅇ하자”는 건지 불분명하지만, 의미는 전달되니 의사전달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글을 보는 입장에서 조금 불편할 뿐이지요.
앞서 꼬마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행운은 명사로써 ‘좋은 운수 또는 행복한 운수’라는 뜻입니다. 행운 뒤에는 [행운을 빌다, 행운이 따르다, 행운이 오다, 행운을 기원하다]처럼 조사를 사용해야 자연스럽지요. 같은 명사라도 행복은 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하세요’를 붙일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특이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서 “새해 행운행운 하세요!”라는 카피(copy)를 뽑은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야 하니 이해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문법입니다. 대충 눈치로 그 뜻을 헤아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SNS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 겁니다. 앓느니 죽는다지만 ‘말’ 때문에 죽을 수는 없으니 견기이작(見幾而作)*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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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기이작(見幾而作): 주역(周易)의 계사(系辭)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일의 기미를 보아 일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일의 낌새를 알아채고 미리 조처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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