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Andy Weir)가 쓴 첫 장편소설 마션(The Martian)을 읽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안목이 탁월했었는지 모르지만 일부 몇 작품을 빼곤 지금까지 대체로 괜찮은 내용의 책들만 읽어온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션은 운이 좋은 작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번엔 내가 아니라 마션의 운이 좋았다는 거다. 다소 보수적인 책 고르기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선택되었으니까. 나는 우선 책표지부터 까다롭게 본다. 표지가 어지럽거나 유치하게 디자인 되었다면 옥석을 고르는 작업에서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
마션의 경우 ‘유치한 것’에 해당되었다. 유아서적에서나 볼 수 있는 표지그림(앞)과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지만 과하게 들어간 설명글·그림(뒤)을 보고 나는 이미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있었다. 초등학생이나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겉이 그렇다면 속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럼에도 몇 장을 넘겨보는 수고는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마션의 시작부분이다. 화성에 혼자 남겨진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혼자 내뱉은 독백이자 그가 작성하는 일지에 기록된 첫 문장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작부터 눈길을 끌다니 괜찮은 시작이다. 제자리에서 서너 장을 더 넘겨보고는 구입했다. 재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며칠 전, 우연히 OCN에서 방영하는 영화로 만들어진 ‘마션’을 보게 되었고, 옛날 마션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재미 있었던 기억이 나서 서평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평을 위해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여전히 재미있다. 와트니식의 유머는 나와 코드가 잘 맞는다. 아마 작가 앤디 위어의 성격이 마크 와트니와 같으리라.
「나사의 아레스3 탐사대는 화성을 탐사하던 중 모래폭풍을 만났다. 그 와중에 팀원 마크 와트니가 실종되고, 그가 사망했다고 판단한 아레스3 탐사대는 그를 남기고 화성을 떠난다. 하지만 극적으로 생존한 마크 와트니는 남은 식량과 기발한 재치로 화성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려 노력한다. 마침내, 와트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나사에서 알게 되고, 나사는 마크 와트니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와트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레스3 탐사대 또한 그를 구출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법을 찾는다.」 이상이 간단한 줄거리다.
앤디 위어의 마션은 SF소설(Science Fiction, 공상과학소설)이다. 마션(Martian, 화성인)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지구 밖 화성에 관한 우주이야기다. 와트니가 머물고 있는 화성과 지구 나사(NASA)의 관제센터 그리고 아레스3 탐사대가 있는 우주의 어느 공간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끌어가기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한 좋은 설정이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낙담하여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도 있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름 아닌 성격일 것이고. 앤디 위어는 주인공으로 마크 와트니를 잘 골랐다. 와트니의 성격은 끝내준다.
“마크 와크니는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물론 아레스 탐사대의 대원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크 와트니는 그중에서도 특히 임기웅변에 강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성격이 그의 목숨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러자 아이린이 맞장구쳤다.
“아마 그럴 겁니다. 게다가 성격이 좋은 사람입니다. 늘 유쾌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죠. 재치도 있고요. 아레스 탐사대의 대원들은 출발 전 몇 달 동안 아주 엄격한 훈련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스트레스 징후를 보였고 감정의 기복도 컸습니다. 마크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좀 더 농담을 많이 해서 모두를 웃게 하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표출했어요.”
“정말 멋진 사람인 것 같군요.”
아레스 탐사 임무의 전담 비행심리학자 닥터 아이린 실즈가 방송에 출연하여 진행자와 대담을 나누며 알려준 마크 와트니의 성격이다. 책의 곳곳에, 그러니까 마크 와트니가 작성한 기록에는 닥터 아이린 실즈가 얘기한 와트니의 ‘좋은’성격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많다. 앤디 위어는 인물의 성격묘사에 많은 공을 들였다. 괜찮은 캐릭터다.
이 작품은 앤디 위어가 약 3년에 걸쳐 준비한 글을 자비를 들여 출판한 것으로 뒤에 괜찮은 작품이라는 소문이 나자 큰 출판사에서 계약을 맺고 정식 출판했다.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국내에선 지난 2015년 10월 개봉했는데, 사실적인 과학적 지식과 작품성, 흥행성 등을 겸비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그렇게 알고 있다). 워낙 원작이 좋으니 영화도 괜찮았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영화와 책 둘 다 보고 읽은 입장에서 평한다면 영화보다 책이 서너 배는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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