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흔히 듣는 말 중에, ‘저스트 디퍼런트(단지 다를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름과 틀림’, ‘옳음과 그름’, ‘두드러짐과 쳐짐’의 판단을 요구당할 때면 미국인들은 ‘그 양자는 서로 다를 뿐’ 이라는 말로 판단을 유보하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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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소인족의 대 토론회가 열립니다.
주제는, “계란은 과연 어느 쪽을 깨뜨려 먹어야 법다운가” 하는 것입니다. 두 소인족은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입니다. 한 무리는 계란의 뭉툭한 쪽 껍집을 깨뜨려서 먹어야 법답게 먹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 무리는 갸름한 쪽 껍질을 깨뜨려 먹어야 법답게 먹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편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합니다. 결론이 카랑카랑하게 나지 않고, 상대가 설득당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두 진영의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소리치지요.
“그러면 전쟁이다!”
실제로 이 두 소인족은 이 일로 전쟁을 치되 대가리가 터지게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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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지금도 된장에다 풋고추를 찍어 먹을 때는 오른손으로는 고추 끝을 잡고 밑동을 된장에다 푹 찍어서 먹습니다. 말하자면 굵은 쪽을 먼저 먹는 것입니다. 굵은 쪽에서 먹어 들어가다가 손가락 사이에 남는 고추 끝은 버립니다.
고추 끝은 매운 맛이 없고 비린 맛만 있어서 입맛을 버리기 십상이기도 하려니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지방 출신인 내 친구는 그렇게 먹지 않고, 꼭지를 쥐고 고추 끝에서 밑동쪽으로 먹어들어가다가 꼭지만 남으면 그 꼭지를 버리고는 했습니다. 말하자면 가는 쪽을 먼저 먹는 것입니다.
나는 그게 이상해서 이상하다고 했다가, 굵은 쪽부터 먹어야 하느니, 가는 쪽부터 먹어야 하느니 하면서 내 친구와 입씨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윤기 ≪에세이 온 아메리카≫ 중에서
‘다름과 틀림’에 대한 생각을 저자가 오랜 기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체험했던 경험했던 미국인들의 대처 방법을 소개하면서 풀어간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해당 글에서 사람들이 다른 것과 틀린 것에 대하여 별다른 거부감 없이 혼용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름과 틀림’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전쟁’ 부분과 어릴 때 개인적 경험을 에피소드로 삽입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분명 인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소한 대화 중에는 말이죠. 그런데 하는 행동에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 대목을 생각합니다.
단지 다를 뿐… 이라니,
정말 멋진 표현 아닌가요?
-덧붙임-
위에 소개한 에피소드는 1994년 경 신동아를 통해 발표된 글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의 글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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