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중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마음속에 병(病)처럼 쌓여가는 답답함의 해결방안을 책속에서 찾아볼 요량이었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래서 선택한 책이 우리에게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로 잘 알려진 존 스타인벡의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다. 표지에는 ‘존 스타인벡의 아메리카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일부분의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인이라면 일상에서 벗어나 정처 없는 여행길에 대한 동경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마력은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지만, 삶의 족쇄에 발목이 잡혀 있는 신세라 ‘일부분의 사람들’에 포함되지 못했다.
책을 펼치면 ‘존 스타인벡의 여행경로’라는 안내와 함께 미국지도가 좌우 2쪽에 걸쳐있고, 오른쪽 아래 부분에 본문 중에 발췌한 내용이 적혀있다(이 책의 구입동기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지도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 주위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자연 풍경보다 채색된 지도에 더 많은 주의를 쏟는 것이 기쁨이다. … 또 다른 유형의 여행가들도 있다. 그들은 노상 지도상으로 자기네가 어떤 지점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든다. …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다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본문 중에서
찰리와 함께한 여행 존(저자인 존 스타인벡, 이하 존)은 트럭에 온갖 물건들을 가득 싣고, 그의 애견과 함께 미국대륙을 한 바퀴 도는 여행길에 오른다. 든든한 동반자 ‘로시난테’와 ‘찰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로시난테는 트럭회사에 부탁하여 3~4톤 되는 트럭을 주거가 가능하도록 특별개조한 일종의 캠핑카이다. 로시난테는 적재량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싣고 다니느라 시작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찰리는 프랑스산 푸들종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훈련을 받아 프랑스어에는 능통하지만 영어에는 반응이 다소 굼뜨다. 개나 사람이나 언어교육은 현지생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찰리을 보고 느꼈다.
찰리는 덩치는 좋으나 의외로 싸움을 못한다. 그래서 덩치가 통하지 않을 때는 대략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개 주제에 독심술에 능해 존의 총애를 받고, F발음을 할 줄 알아 한번씩 “프트트..”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존은 자신이 알기로 F발음을 할 줄 아는 개는 찰리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총 4부로 이루어져있고, 그 뒤로 번역자인 이정우(존칭생략)의 글 등이 있다. 1부에 여행에 대한 단상과 준비과정 그리고 로시난테와 찰리에 대한 소개가 있고, 2부에는 본격 여행담이 들어있다.
여행과정의 모든 에피스드를 담기엔 한 번의 포스팅으로는 무리가 있으므로, 존이 여행을 떠난 이유만 살펴본다. 사실 자다 일어나 이 책을 읽은 것도 ‘아메리카’를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다.
존이 왜 여행을 떠났을까?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게 아니고 여행이 사람을 데리고 간다”라는 문장에서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그리고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라며 작가적 양심선언을 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존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들의 눈엔 “나도 떠나고 싶다”라는 갈망이 담겨 있다. 어쩌지 못하는 이유로 현실에 묶여 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심리가 있음을 존은 알게 된다.
여행을 통하여 마음을 살찌우고 사고(思考)에 깊이를 더할 수 있음을 존의 여행을 통하여 느낄 수 있다. 존은 58세에 떠난 4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총 여행거리 1만 마일(일만 육천 킬로미터 정도).
존이 여행에서 보고 온 것은 멋진 풍경이나 유적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 혹은 나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참 여행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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