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이 찌는 듯했던 여름이 지나는지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피부가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려니, C-19로 닫혀있던 동네 문고의 문을 안면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열고 들어가 몇 권의 책을 빌려왔다.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 가운데서 아무렇게 그렇지만 면밀하게 살펴 선택한 책이 마크 설리번 지음, 신승미 옮김의 진홍빛 하늘 아래(Beneath a Scarlet Sky)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적 배경지식을 염두에 두고 읽었지만, 이야기는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던 당시 밀라노에 살던 소년 피노는 아버지의 권유로 레 신부를 따라 유대인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밀라노를 잠시 떠나 있었다.
18살의 성인이 된 피노는 강제징집될 상황에서 나치에 대항하여 싸우고 싶었지만, 전장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보다는 자발적인 독일군 입대가 낫다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독일군이 된다.
입대한 어느 날 피노는 히틀러의 최측근인 한스 위르겐 장군의 운전병이 되고, 독일군의 정보를 빼내는데 적합한 보직이라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연합군을 도울 수 있는 스파이를 자처한다.
연합군의 반격으로 1945년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함으로써 나치는 막을 내리고, 이탈리아는 게릴라와 무솔리니의 처형 등 긴밀한 상황으로 긴장감이 맴돈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피어나듯 피노 역시 안나와 사랑에 빠진다. 피노와 안나의 사랑은 슬픈 엔딩으로 끝나지만, 이 일은 피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자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알프스산맥에서 유대인 피난민들을 안전한 나라로 안내할 때나 첩자로 살 때의 피노는 믿음이 있고 이타적인 사람이었으나, 총살 집행대에서 보게 된 안나를 외면하면서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피노는 그렇게 변한 자신을 혐오한다.
어느 날 안나와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인 해변을 산책하면서 피노는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서, 그저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노력하면서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고, 행복과 은총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그 행복과 은총을 현재의 즐거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고 했다.
피노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싶지 않다는 것과 살아가는 매 순간 일어나는 기적에 감사하고 더 나은 내일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믿음이 항상 보답 받지는 못할지라도.
진홍빛 하늘 아래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아마 영화로 제작된다고 해도 좋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싶다.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러워 제대로 소개를 못했지만 모처럼 괜찮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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