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자동차나 오래되면 여기저기 탈이 나는 법이어서 미리미리 관리해줘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누구나 아는 이런 상식을 무시하게 되면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나에겐 20년 묵은 구렁… 이가 아니고 자동차가 있는데 이 자동차가 발통을 제외하곤 딱히 어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식이 연식인지라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지하 주차장에서 잠만 잔다.
볕이 따뜻한 어느 날, 담벼락 밑에 앉아 생각했다. 무릇 자동차란 끌고 다니라고 존재하는 것이지 지하실에 잘 처박아두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퍼지는 것이 두려우면 누구나 아는 상식처럼 미리 손을 보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자동차를 손보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육안으로 드러나는 부분과 보이지 않으나 필히 점검해야 하는 부분으로 분류하여 점검하여 손보기 위한 목록이 작성됐다.
△배터리 교체 △타이어 교체 △부동액 점검 및 교환 내지 보충 △브레이크 패드 점검 및 교체 △엔진오일 등 각종 오일 교환 △청소 △기타
점검표를 작성한 후 그에 맞춰 부품을 구하기 위해 폐차장을 다녔다. 다행히 배터리는 쉽게 구해 교체했다. 그동안 시동이 안 걸려 자동차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진즉에 갈았어야 했는데 괜히 배터리의 초록색 불빛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배터리는 어떻게 쉽게 구했지만 타이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거의 나오지 않는 사이즈인지라 근 두어 달을 안면을 튼 폐차장에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고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된장.
그러다 모 타이어 전문점에서 기증받다시피-자기들 말로는 원가도 안 된다는 가격으로- 발통 4짝 모두 새것으로 갈 수 있었다. 알아본 바로는 그냥 싼 곳이 개당 8만 원, 제일 싼 곳이 6만 원 정도였는데, 그보다 싸게 했으니 발품은 했다. 만약 폐차장에서 구할 수 있었다면 개당 2만 원이면 되었을 테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타이어를 교체하니 핸들을 잡는 느낌부터 달랐다. 바퀴가 도로에 착 달라붙는 것이 꼭 페라리를 운전하는 느낌이다.
배터리와 타이어는 해결했고, 목록에 남은 항목들은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 한다. 괜히 부동액이나 오일 교환한다고 차 밑에 기어들어가 코크 잘못 열면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특히나 부동액 폐수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니 잘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물어물어 공임나라에 갔다.
가서 부동액 교체하고 이거저거 해달라고 했더니 사장 느낌을 주는 정비사가 자동차와 나를 번갈아 한 번씩 보더니 “그냥 타시지요.” 한다. “보조탱크 물이 시커먼데······” 하니 라디에이터 뚜껑을 열어보더니 안 갈아줘도 된단다.
정비사는 차를 오래 타면 보조탱크 속은 으레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라며 “부동액 갈고 다른 부분들 손보면 (나야) 돈 벌고 좋지만 (차의 상태로 보아) 한번 손대면 끝이 없어서 손 안 대는 것이 돈 버는 겁니다.”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얼마 전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떠난 장모님과 작년, 재작년 차례로 세상을 떠난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때 중환자실의 의사는 그저 생명유지 장치만 달아 놓았을 뿐 치료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는데 환자가 젊었다면 아마 이야기가 다르지 않았을까.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세상에 확실한 한 가지는 세상 모든 것에 종말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하다못해 사물이든. 하늘의 별도 달도 태양도 정해진 수명이 있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 이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중환자실의 의사는 그런 사실을 경험칙으로 알고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공임나라의 정비사도 부모님이 입원했던 중환자실의 의사처럼 20년 된 나의 자동차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었나 보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상태가 좋을 때 열심히 관리해야지 이미 그 끝에 다다르고 보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 평소부터 관리에 힘쓰고 때가 되면 차분히 하늘의 처분을 받을 일이다. 착하게 살아야지.
돌아오는 길에 셀프 세차장에 들러 깨끗하게 청소했다. 더 이상 정비는 무의미하다니 앞으로 다른 것은 몰라도 너를 깨끗하게 씻겨는 주마!
오늘도 햇볕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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