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하다 심란해. 보통 심란한 것이 아니고 많이 심란하다. 이렇게 심란한 까닭은 가키야 미우(垣谷 美雨)의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소설책 때문이다.
소설, 그러니까 픽션일 뿐인 책 한 권에 심란하다니 소가 웃을 일이지만 실상이 그러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에 적응이 안 된다. 왜 심란한지는 이 글 끄트머리에 얘기하고 우선 이 책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왕족뿐이다. 더불어 정부는 안락사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할 방침이다.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재정의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고 한다. 그리고 시행 1차 년도의 사망자 수는 이미 70세가 넘은 자를 포함해서 약 2,200만 명, 2차 년도부터 해마다 150만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년간 이 나라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여파로 연금제도가 붕괴되었으며, 국민 의료보험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다. 나아가 장기 요양 보험의 인정조건이 점차 까다로워졌음에도 재원은 충당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예견하고 있던 일이지만, 이 법안은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인권침해의 극단적인 예로, 종교단체는 물론 각국 의회에서도 법안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이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탈리아와 한국 등은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태도이다. 한편 중국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빨라, 노령인구가 인구의 20퍼센트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구의 20퍼센트면 이 나라 총인구의 약 두 배에 해당된다. 그 때문에 중국 정부가 이 법안이 앞으로 어떻게 시행될지를 주시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전후 이 나라는 식량사정이 급속도로 좋아졌으며 의료 환경도 개선되었다. 그 덕분에 날로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과연 장수는 인류에게 행복을 초래했는가.
원래 같으면 축복받아야 할 장수가 국가재정을 압박하는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 병수발을 드는 가족의 인생을 짓밟는 측면도 있음을 이제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전 세계가 이 논제로 격론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 법안은 2년 후 4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주간신보》 2020년 2월 25일 호
70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죽어야 하는 법안이 가결되었다는 기사로 가키야 미우의 ‘70세 사망법안, 가결’이 시작한다.
70세가 되면 강제적으로 죽어야 한다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겠지만, 사회가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자 정부에서 붕괴된 연금제도와 바닥을 드러낸 의료보험 재정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타파하고자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기 때문에 정말 귀신이 씻나락을 까먹었다.
그러자 방송 등 여러 언론매체에서는 나불나불 말 잘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갑론을박(甲論乙駁) 하는데, 정부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국가 재정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며 대국민 홍보전을 펼친다.
어차피 법안은 통과된 것, 사람들은 70세 사망법안을 받아들인다. 원래 인간이란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살 만큼 살았더니 이제 사는 것이 지겹다”
“내가 죽음으로써 자식들이 행복할 수 있다니 그것도 좋은 일이지”
이야기는 운신을 못하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며느리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줄기로 하고, 각각의 가족 구성원이 안고 있는 사연들을 가지로 하여 전개되고 된다.
50대 며느리 도요코는 극성스러운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친구 만나 차 한 잔 마시기는커녕 집에서조차 숨 쉴 틈이 없는데, 버젓이 있는 남편, 자식, 시누이 어느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시들어 간다. 시어머니가 사망법안에 따라 2년 후 안락사 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남편 시즈오는 집안일은 부인이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사람의 전형이다. 그는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자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살겠다며 부인이 힘들어하든 말든 친구와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다.
아들 마사키는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지만 적응하지 못해 퇴직한 후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회부적응자이고, 딸 모모카는 도와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뿌리치고 집을 나와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일하지만 집안일은 외면하는 인정머리라고는 1도 없는 딸이다.
결국 이 책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야기하는 각종 문제들, 이를테면 노인 부양문제, 취업문제나 노동, 환경 등 모두 담고 있다.
작가가 일본 사람이고 배경 역시 일본이지만, 이 소설이 설정한 환경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임여성 한 명당 출산율 0.98명인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약 50년 후, 정확히 2067년이 되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된다고 통계청이 밝혔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줄고 노년층이 급증하여 절반이 일해서 절반을 부양하는 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낮은 출산율이나 고령화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 소설 속 설정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 제로인 소설 속의 설정일 뿐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어느 미친 집단이 정권을 잡고서 이런 유사 법안을 만든다면 “그따위 미친 짓 집어치워라”라고 모든 국민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먼 역사 속의 이야기는 차치하고 가까운 시간들만 더듬어 보면 우리가 한목소리를 낸 적은 2002 월드컵 시즌에 ‘대한민국’을 외치던 때와 IMF를 맞아 ‘금 모으기’를 할 때 등 손에 꼽을 정도일 뿐 그 외는 모든 사안들마다 분열하고 대립하는 갈등의 역사였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두고서, 왜 달을 안 보고 손가락을 보냐고 나무란다. 그래서 손가락을 안 보고 달을 봤더니 왜 손가락을 안 보고 달을 보냐고 빈정거린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내로남불’이라는 한글과 영어와 한자가 섞인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나는 뭐든지 옳고, 맞고, 선(善)이지만 너는 뭐든지 그르고, 틀리고, 악(惡)이라는 건데, 내 편이 하는 말은 여론이고, 니들이 하는 말은 가짜뉴스가 되는 지금의 현실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자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인 양 나이든 사람을 ‘틀딱’이라며 비하하는 사람들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젊은이가 늙은이 되는 거 한순간인데, 하루살이에게 매미의 삶을, 매미에게 개구리의 삶을 알려준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자각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각설하고,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묵직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지만 일본 특유의 가벼운 묘사로 인해 읽기에 불편함은 없다. 가볍게 읽고 사유하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나는 개의치 않지만 일본 작가가 쓴 번역서라는 거 분명히 말했으니 읽거나 구매하는 것 등은 알아서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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