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궐 판타지 로맨스 역사소설 홍천기

홍천기
2016년 12월 출간된 정은궐 판타지 로맨스 역사소설 홍천기.

“여인에게 관직을 제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찾아오라”

성격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글만은 재미있게 써내려가는 사람.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나 -문장을 세세히 살펴보면 여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드는 얼굴 없는 작가 정은궐.

정은궐 작가가 2016년 12월 ‘홍천기’를 출간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있었다. 2018년부터 방영될 이 드라마는 캐스팅에서 에러만 범하지 않는다면 흥할 것이 틀림없다.

사실 정은궐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이 한정적이다. 캐릭터가 분명한 인물들과 적절하게 섞여있는 러브라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데 작가의 재미난 이야기 솜씨로 볼 때 ‘홍천기’ 역시 ‘성균관 스캔들’이나 ‘해품달’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하지 않을까 싶다.

홍천기는 조선 세종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경복궁을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펼쳐지는 도화서 화원 홍천기와 천문을 읽는 관상감 하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홍천기에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그 후속작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 등장했던 ‘잘금4인방’과 흡사한 역할의 ‘개떼들’도 등장한다. 이 개떼들은 소설 속에서는 큰 활약이 없었으나 드라마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정은궐 소설의 특징은 딱히 악역을 맡은 인물이 없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 홍천기에서도 여전하다. 꼭 선악대결이 흥행을 보장한다는 것이 잘못된 공식이라는 것을 ‘내 딸 서영이’ 뿐 아니라 정은궐 소설이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홍천기는 성현의 ‘용재총화’에 기록이 남아있는 조선시대 유일의 여성 도화서 화원으로 종7품 화사를 지낸 실존인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절세미인이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점을 잘 포착하였다.

머리속에서 하람을 빼고나면 빈 바가지만 남을 것 같은, 무식하고 눈치도 없는 개충이 홍천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연애하는 마음으로 홍천기를 읽었다.

책을 통해 배움을 추구한다지만 어떠한 책이든지 재미가 없다면 고문이나 진배없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독자가 있다면 주저없이 홍천기를 집어 들어도 좋을 것이다.

용재총화
용재총화. 서울대 규장각 소장. 1525년(중종 20) 처음 간행된 용재총화는 총 10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고려로부터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의 인물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제도, 풍속, 설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다.

화사 홍천기는 여자인데 얼굴이 한때의 절색이었다. 마침 일을 저질러 사헌부에 나아가 추국을 받았다. 달성 서거정이 젊었을 때에 여러 소년들의 무리를 따라다니며 활 쏘고, 술을 마시다가 또한 잡혀와 있었다.

서거정¹은 홍녀의 옆자리에 앉아서 눈짓을 보내고 잠시도 돌리지 않았다. 이때 상공 남지가 대사헌이었는데, 보다 못해 말하기를, “유생이 무슨 죄가 있는가. 속히 놓아주어라”했다.

서거정은 나와서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어찌 공사가 이처럼 빠르냐? 공사는 마땅히 범인의 말을 묻고 또 고사를 받아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한 뒤에 천천히 하는 것이거늘, 어찌 이렇게 급하게 하는가?” 했다.

이것은 홍녀의 옆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을 한탄해서 한 말이었다. 친구들이 듣고 모두 웃어 마지않았다.

-성현² 지음, 홍순석 옮김 ‘용재총화(慵齋叢話)’ 중에서

*****

1. 서거정(徐居正, 1420년~1488년)은 조선 문종, 세조, 성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임금을 섬겼다.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시화(詩話)의 백미인 ‘동인시화(東人詩話)’와 ‘동문선(同文選)’ 등을 남겨 신라 이래 조선 초에 이르는 시문을 선집, 한문학을 대성했다.

덕행이 있어 세조 때 ‘경국대전’, ‘동국통감’,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 등 책의 편찬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또한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했다.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했다.

2. 성현(成俔, 1439~1504)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호가 용재이다. 24세이던 1462년(세조 8)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대제학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명문가 출신에 고급 관료였지만 다방면에 조예가 깊어 ‘만물박사’로 통했다.

그는 시문 1000여 편을 남긴 대문장가였다. 세 차례나 명나라에 사절단의 일원으로 가서 중국 문인선비들과 시를 지어 화답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문사로서 크게 각광받았다. 또한 음악이론가로서 명성이 높았는데 55세이던 1493년(성종 24)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악서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한덕구
Copyright 덕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덕구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하는 조건으로 기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으나, 무단전재 및 각색 후 (재)배포는 금합니다. 아래 공유버튼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