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

히든 피겨스
히든 피겨스 표지와 저자 마고 리 셰털리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은 성경 마태복음 7장 7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문밖에 있다는 것을 알아도 하나님은 두드리지 않으면 문을 안 열어 주신다.

미·소 양국의 우주로 향한 전쟁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 나사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쓴 마고 리 셰털리(Margot Lee Shetterly)의 책 《히든 피겨스: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 이야기》와 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시어도어 멜피 감독의 동명의 영화는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린 세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수학천재로 나사에서 인간 계산기 역할을 하며 유인우주비행선을 위한 궤도 역학계산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캐서린 고블(결혼하여 성이 ‘존슨’으로 바뀜)과 뛰어난 코딩실력으로 IBM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슈퍼바이저 도로시 본, 나사의 엔지니어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메리 잭슨이 세 주인공이다.

‘히든 피겨스’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이들 세 여성이 갖은 차별을 이겨내고 미국 최초의 우주인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웠던 스토리가 감동스럽게 담겨 있다.

천재성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엔 남녀가 없고, 용기엔 한계가 없다.

나사(NASA)에는 백인전용과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있고, 전기포트도 ‘유색인종 전용’이 있을 정도로 차별이 심하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 하던 시절이어서 나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흑인이, 그것도 여성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감동적인 장면 #1

나사의 수학 계산원이었던 캐서린 고블은 간간히 자리를 비운다. 캐서린이 근무하는 동관에는 유색인종 화장실이 없어 멀리 유색인종 화장실이 있는 서관까지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동관은 1군들이 근무하는 곳으로, 서관은 2군들이 머무는 곳으로 그려진다.

나사의 책임자 해리슨이 걸핏하면 자리를 비우는 캐서린을 나무라자, “나에게도 화장실에 갈 자유는 있다”고 반항(?)을 하며 매일 서관에 가야하는 까닭을 토로하는데, 흑인에 대한 차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해리슨은 사정을 알고는 동관의 백인전용 화장실 팻말을 해머로 부셔버린다. 그러면서 “나사에는 남·녀 화장실만 있다”고 선언한다. 브라보~ 해리슨!

감동적인 장면 #2

메리 잭슨은 나사 엔지니어가 꿈이다. 나사에서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백인들만 입학 가능한 햄프턴 고교 수업 이수를 내세운다. 이미 수학과 물리학 학위를 가지고 있던 메리는 “또 결승점을 옮기는군.”하며 한숨을 짓는다.

메리 잭슨은 나사의 부당함에 굴하지 않고 백인만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하여 법원에 ‘햄프턴 고교 수강 청원’을 하고 판사를 설득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판사는 햄프턴 고교는 백인 학교이고, 버지니아는 분리정책을 따르므로 연방정부나 대법원이 뭐라고 하든지 현행 법률을 고수할 것이라며, 매리 잭슨의 청원을 불허할 뜻을 내비친다. 그러자 메리 잭슨이 판사에게 최면을 거는데······.

“흑인 여성이 백인 학교엔 왜 가려는 겁니까?”

“가까이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

“누구보다 최초의 중요성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죠?”

“판사님은 가문 최초로 군에서 복무하셨습니다, 해군에서. 대학도 최초로 들어가셨죠, 조지 메이슨 대학. 그리고 주지사 3명이 연속 재임명한 최초의 주 판사십니다.”

“조사 좀 했군요.”

“그렇습니다.”

“요점이 뭡니까?”

“요점은 버지니아 주 흑인 여성 중에 백인 학교에 입학했던 사람은 없단 거죠. 전례가 없습니다.”

“전례가 없죠.”

“앨런 셰퍼드가 로켓에 타기 전엔 우주로 나갔던 미국인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 이름은 최초로 우주에 나간 해군 파일럿으로 영원히 기억되겠죠. 그리고 저는 나사의 엔지니어가 될 계획입니다. 하지만 백인 학교의 수업을 듣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피부색을 바꿀 수도 없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초가 돼야 하지만 판사님 없이는 불가능하죠. 판사님, 오늘 보시는 많은 재판 중에 100년 뒤 기억될 재판은 뭘까요? 어떤 판결이 판사님을 최초로 만들까요?”

······

“야간 수업만 허락합니다. 잭슨 씨!”

비록 야간 수업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메리 잭슨은 백인 고교에서 수강을 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고, 소망대로 나사의 엔지니어가 된다.

엔지니어보다 비즈니스나 세일즈에 더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메리 잭슨의 법정에서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세 주인공. 왼쪽 두 번째부터 도로시 본, 캐서린 고블, 메리 잭슨.
히든 피겨스의 실제 인물
히든 피겨스의 실제 인물. 왼쪽부터 도로시 본, 캐서린 존슨, 메리 잭슨. 도로시 본은 다른 두 명보다 10년 이상 연상이다.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이 그대로 실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세 여성은 차별이 존재했던 상황에서 당당하게 맞서 성공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히든 피겨스는 탄탄한 스토리에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여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영화이다.

영화가 끝나고 마태복음 7장 7절을 떠올린 것은 영화의 감상 포인트가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맞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한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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