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련의 음악으로 행복나누기(3)‘노래’라는 한 배를 타고

나리타공항
나리타공항

마음.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나는 한 가지 마음을 가지고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는 도쿄에서 서쪽 방면인 신아키츠. 이곳에 위치한 신아키츠 그리스도 교회에서 2018년 12월6일과 9일 2회에 걸쳐 일본인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콘서트’를 하기 위해서다.

이 음악회를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곡을 준비해야 언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 외국인들과 마음을 나누는 음악회를 할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신아키츠교회 목사님과 의논 끝에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14곡 정도 준비하기로 하고 곡을 어느 정도 골라서 준비를 시작할 때쯤 그쪽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5곡을 불러주길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느낌이 좋았다.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준비한 곡들을 모두 포기하면 크지는 않지만 시간적, 경제적으로 작은 손실이 있음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일본에서 보내온 5곡의 악보들을 한 번씩 불러보며 잘한 결정이었고, 어쩐지 좋은 음악회가 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일본어 노래 5곡과 크리스마스 노래 5곡 등 15곡을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연습을 하면 할수록 불안감이 밀려왔다. 모든 곡이 완벽하게 선곡되었고,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본 노래로 5곡이나 준비되었음에도 자꾸만 불안해졌다.

일본어를 모르니 한국인 일본선교사님이 일본어 밑에 한글로 음을 적어주었는데, 그대로 읽고 있자니 내가 마치 앵무새 같았다. 아무 의미도 모르고, 뉘앙스는 더더욱 느낄 수도 없는데 글자만 나열해 읽는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소통함이 없으면 아무 것도 전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가사에 담긴 뜻을 최대한 악상을 이용하여 세게, 여리게, 빠르게, 느리게, 부드럽게, 거칠게 표현해주어야 하고, 때로는 한 호흡으로 불러야 할 것을 두세 호흡으로 나누어 불러야 하고, 반대로 두 번의 호흡으로 불러야 할 것을 한 호흡으로 불러야 하는 등 곡 전체의 분위기와 가사의 의미에 따라 연주해야만 한다.

노래를 하나 완성하기까지는 이 노래에서 작사가는 왜 이런 단어와 이런 표현을 사용했으며, 작곡가는 왜 이 조성을 선택했고, 왜 이곳에서 이런 화음을 사용했는지 등등 알아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음에도 나는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사전적 의미 정도뿐이었다.

답답했다.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나는 그들과 ‘함께’가 아닌 ‘홀로’ 음악회를 하고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나를 쳐다보며 ‘뭐 하는 거지?’ 하며 그 시간 나의 음악이 아닌 다른 일로 생각에 잠기게 한다면 음악가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고, 스스로를 실력 없는 음악가로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음악회야말로 음악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요, 수치스러운 순간일 뿐이니, 고작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려고 그 먼 곳까지 시간 낭비하며 다녀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노래 ‘흐르는 강물처럼’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기 시작했다. 유명한 노래답게 많은 사람들이 부른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중에서 1989년에 작고한 일본의 최고 가수 ‘미소라 히바리’라는 가수의 영상을 추천 받아 들으며 노래 공부를 시작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듣기를 몇 주째. 여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아! 이래서 여기서는 이렇게 강하게 불렀구나. 또 여기에서는 이렇게 부드럽고 작은 소리로 불렀구나.

느낌이 오니, 마음이 전달되어 오는 듯했다.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최소한 몇 주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가 전달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 이건데. 언어와 사상이 다르더라도 내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느낌이 전달되는 것처럼 그들도 이런 나눔이 있어야 할 텐데. 전처럼 불안한 마음은 없어졌지만, 안타까움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 안타까운 마음을 해결하지 못한 채, 12월 6일 신아키츠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에 쫓겨 떠나기 전 한 주간 동안은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악보만 손에 쥐고 있었다. 게다가 미리 짐도 싸지 못하고 떠나기 바로 전날 밤 10시에 대충 짐을 싸고 12시에 잠들어 4시에 일어나 인천공항으로 떠났으니 몸이고 마음이고 모두 엉망이었다. 더군다나 첫 공연은 12월 6일 저녁 7시. 도착해서 쉬고 연습하고 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악조건이었다.

이번 공연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나를 초청한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도가 절로 나왔고, 급기야 자아비판에까지 이어졌다.

드디어 저녁 7시.
준비한 곡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나니 마약을 한 듯 온 몸에 힘이 쭉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잠이 모자라 머리가 멍했던 느낌도 없어졌다(느낌이 아니고 정말 없어졌다).

한 곡 한 곡 그렇게 노래를 불러갈 때 쯤, 콘서트 분위기가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문득 모든 것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내 옆에서 나를 통역해주는 일본인 ‘사와코상’을 보았다. 그녀는 내 말 하나, 하나 바르게 통역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듣는 분들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처음부터 그랬었을까? 그들은 여전한데 내가 바뀌었는가? 아까 느꼈던 그 마약의 힘이 한층 더 강하게 들어왔다. 이제 그들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아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듣는 이,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여 따라 부르는 이, 손을 모으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듣는 이······.

그 순간, 나는 결코 앵무새도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미소라 히바리’였다!

그렇게 14개의 고개를 무사히 다 넘은 후,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하였다. 한 사람씩 정성스럽게 만들어 온 음식으로 모두의 마음과 입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본은 이렇게 자기가 먹을 음식을 조금씩 만들어와 함께 먹는다고 한다. 참 경제적이고 마음 따뜻한 문화라 생각한다.

언어는 다르지만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한 사람씩 콘서트를 본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어떻게 외국어인데 자기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놀라웠다며 하는 말.

“‘흐르는 강물처럼’ 노래를 들을 때, 눈물을 흘릴 뻔 했어요!”

통역을 통해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해졌다. 아! 내가 그렇게도 걱정하며 수없이 듣고 부르고 했던 노래가 아니던가!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들의 언어로 노래하며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으로 준비했던가! 이렇게 그들과 노래 하나로 마음을 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와 연습이 있었던가!

눈물이 핑 돌았다. 잠이 모자라 피곤에 찌들었던 몸이 마치 고급 안마의자에 앉아 있는 듯 다 풀려버렸다.

북한 속담에 ‘한 배를 타게 되면 마음도 한 마음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환경이나 처지에 놓이게 된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서로 동정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날 ‘노래’라는 한 배를 타고 노래에 담겨진 생각과 뜻을 함께 나누며 한 마음이 되었다.

바로 그날 아침 9시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담았던 마음 한 가지.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노래로 행복해지길.
나의 노래로 마음이 전해지길.
나의 노래가 희망을 전해주길.

황혜련
Copyright 덕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덕구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출처를 밝히고 링크하는 조건으로 기사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으나, 무단전재 및 각색 후 (재)배포는 금합니다. 아래 공유버튼을 이용하세요.